문화 복지와 예술가 지원
문화 복지와 예술가 지원
  • 배승철
  • 승인 2011.11.30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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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기가 빠듯했던 시기의 복지는 의식주와 같은 물질적 욕구 충족에 국한된 개념이었다. 그러나 소득수준 향상에 따른 새로운 생활패턴이 등장하면서 종래의 복지개념이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반성이 생겨났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문화복지다.

기본적인 취지와 방향만 놓고 보면 문화복지의 등장은 5공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이는 5차 경제발전 5개년 계획 문화예술 부분에 명시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생활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는데 있어서 문화예술의 진흥은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계획 기간 중에는(……)지역간·계층간 문화격차를 해소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선언적 구호에 불과했을 뿐, 구체적인 실천이나 성과가 뒤따르지는 않았다. 문화복지가 구체적인 정책용어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1996년에 문화복지 기본구상을 발표하고 구체적인 시책을 계획했는데, 일상 생활공간에서 문화향유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요사이 전라북도에서도 문화복지가 주요 관심사다. 전라북도 도정의 주요 방향이 ‘삶의 질 향상’으로 전환되면서 문화복지와 관련된 신규사업도 대폭 늘어날 예정이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문화복지 사업을 확대하는 것은 결국 일반 서민의 문화적 혜택 폭을 넓히자는 것인 만큼 그 취지에 대해서는 필자도 적극 공감한다. 하지만, ‘삶의 질 향상’을 내세우며 추진하려는 전라북도의 문화복지가 정책적으로 얼마나 짜임새 있게 마련되었고 또 추진될 수 있을 것인가는 별도의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문제를 언급할 수 있겠으나 문화복지와 예술가에 대한 지원이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는 점만 짚고 넘어가 보자. 전라북도의 문화복지 사업을 확대한답시고 정작 예술의 생산자인 예술가를 지원하는 일에 소홀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라북도의 문화복지가 단순한 일회적 관심을 넘어 제도적 정착으로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예술가 지원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균형 있게 유지되어야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예술가들의 삶은 매우 궁핍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전라북도와 같이 마땅한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예술가가 자신의 창작물을 매개로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고생을 감내하면서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활동하면 그나마 최소한의 생계유지가 부수적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기대난망의 일이다. 예술가가 꼭 가난해야만 예술가이겠는가. 배가 고파야 걸작을 만든다는 건 과거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공공부문에서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해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예술가 지원이 이렇다할 효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필자가 과분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수십 년간 지속하여 온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사업이 예술진흥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당연히 예술가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창작활동은 고사하고 당장 수입이 없어 화가들의 경우, 벽화 그리기 아르바이트로 내몰리기가 다반사이고, 그마저 그런 일감도 없어서 날품팔이로 연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연극인은 전문 단체에 속해 있다고 해도 최저 생계비 유지를 장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전업작가를 꿈꾸는 것은 학생시절의 로망일 뿐, ‘투잡’, ‘쓰리잡’을 너끈히 해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고, 심지어는 작가로서의 길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인에 대한 처우개선은 제쳐두고 문화복지만을 내세운다면, 문화복지는 단순한 물량공세에 머물거나 아니면 시류에 편승하는 반쪽자리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예술가 지원을 확대하는 데에는 큰 걸림돌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문화복지는 일반 서민이 정책대상이므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반발이 덜한 반면, 예술가 지원은 “굶주리는 사람도 많은데 왜 예술가를 지원하는가?”, “예술가는 그들이 택한 직업이니까 그들이 알아서 할 일 아닌가”라는 사회적 반발에 직면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문화복지에 비해 더욱 강력한 정책의지를 필요한 이유다.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면 정책결정권자의 철학이 필요한 부분이다.

향후 문화복지는 민선 5기뿐만 아니라 차기 집행부에게서도 주요 시책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변수가 있다고 해도 방식을 달리하거나 규모를 줄여서라도 지속할 것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서민을 위한 정책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문화복지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복지는 반드시 문화예술정책의 틀 속에서, 그리고 예술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더불어 추진되어야만 한다. 예술을 사회적 공공재로 간주하고 지원하는 이유도 결국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예술을 향유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 아닌가.

배승철<전북도의회 문화관광건설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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