볏단과 돌탑을 바꾼 형제 이야기
볏단과 돌탑을 바꾼 형제 이야기
  • 김승연
  • 승인 2011.09.28 14: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마을에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님은 놀부처럼 부자였고, 동생은 흥부처럼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형님네는 윗집에 살았고, 동생네는 아랫집에 살았다. 형님은 농토가 많았기 때문에 가을이 되어 추수할 때면 온 마당이 곡식 단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동생네는 논밭이라고는 한 떼기도 없어 날품을 팔아 끼니를 겨우 때우는 꼴이었다. 그야말로 동생 가족은 가난하다 못해 비참하리만치 헐벗고 굶주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반면, 동생은 형님에 비하여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착하고 정직한 일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은 남의 논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야 형님같이 전답이 많지 않아 농사지은 곡식으로 마당에 볏단을 쌓을 수는 없으니, 매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돌멩이나 하나씩 주어다가 돌탑을 쌓자.”
 

그날부터 동생은 매일 커다란 돌멩이를 하나씩 주어다가 집 마당에 탑을 쌓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고 세월이 지나다 보니 돌탑이 제법 높아졌다. 동생네 식구들은 돌탑을 볼 때마다 그 높이를 보고 기뻐하며 위로를 받았다.
 

그해도 가을 추수는 계속되었고, 형님네 마당엔 볏단으로 가득 찼다. 하루는 형님이 마당을 거닐다 동생네 집을 바라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동생이 쌓아올린 돌탑 꼭대기에 놓인 돌이, 돌이 아닌 큰 아들 머리통만한 금덩이가 빛나고 있지 않은가!’ 그때부터 형님의 마음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마다 저 금덩이를 어떻게 하면 차지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며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고민 끝에 어느 날 순간적으로 좋은 수가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형님은 동생 집을 찾아갔다. “어이 동상 있능가?” “성님, 아니 이른 아침에 웬일이십니껴? 어서 드십시오. 어째 아침은 드셨능가요?” 그리고 아내를 향해 소리쳤다. “어이! 성님 오셨네.”
동생은 형님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아니시, 나 중요한 일로 왔씅께, 그말부터 험세. 어이 동상, 저말이시 요새 살기가 어떤가? 나 쪼까 좋은 의견이 하나 있는디 말이여. 자네 집 마당에 있는 저 돌탑 말이시, 우리 집에 있는 볏단과 맞바꾸세이.”
 

동생은 형님의 제안을 듣고 갑자기 심장의 고동이 멈출 것만 같았다. 여태까지 동생의 가난을 나 몰라라 했던 형님이 때로는 밉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했지만, 형제간의 미움이라는 게 큰 죄인 것 같아 마누라가 어쩌다 불평조로 한 마디 할라치면 혼꾸멍을 내주지 않았던가? 애들이 큰 아빠, 큰 엄마에 대해 혹시라도 딴소리를 하면 종아리를 때리면서까지 형님네를 두둔했던 동생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형님이 동생의 형편을 알고 엄청난 제안을 해왔으니 동생인들 어찌 가슴이 막히지 않으리요? 그래도 형님이 그동안 우리를 잊지 않고 마음 속 깊이 생각해주고 있었나 싶으니 동생은 더욱 감동을 받았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마누라 역시 훌쩍훌쩍 하더니 마침내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동생인들 형님의 제의를 냉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니 성님, 무시기 말씀을 고로코롬 허시요이. 아무리 이 동상이 끼니 때울 형편이 못된다고 헐갑새. 일 년 내내 애써서 지어 가실한 것을 어떡코롬 바꿀 수가 있땅께라. 성님, 아니될 말씀을 허시요이.”
그리고 동생은 딴청을 피우며 아내에게 재촉했다. “어이, 얼렁 나가서 아침 밥상 드리소이!”
형님은 착하디착한 동생을 설득해선 될 성싶지 않아 막무가내로 밀어 붙이기로 했다. “어이, 나 알것네. 자, 이따가 일꾼들을 시켜서 볏단을 옮길 테니까 자네도 준비를 허소.”
 

말을 마친 형님은 총알같이 사립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볏단은 동생의 의사와 무관하게 옮겨지고 있었다. 동생은 하는 수 없이 형님의 볏단 옮기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형님이 맨 위의 볏단 하나를 내려서 곡간 안에 들인 다음, 나머지 볏단들을 옮기도록 명령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생 역시 형님이 하는 대로 돌탑의 맨 위 돌멩이 하나를 내려 안방에 들인 다음 옮기도록 명령했다. 그날 일꾼들은 볏단과 돌단을 옮기느라 종일 애쓰고 있었다.
동생네 가족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형님의 마음은 왠지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내일 아침 반짝 빛날 금덩이를 생각하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난 형님은 동녘에 해 뜨기를 기다렸다. 동녘이 밝아오자 형님은 실눈을 뜨고 앞마당에 쌓인 돌탑을 조심스레 바라다보았다. 돌탑을 보자마자 형님은 현기증을 일으키며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돌탑 맨 꼭대기의 돌멩이에서 금빛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의 밥그릇은 높아 보이고 자기 밥그릇은 낮아 보인다.”
 

북한에서도, “남의 손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이 잡은 일감이 더 헐어 보인다.” 하는 속담이 있다.
요즈음 우리나라 부자들을 보면 너무 욕심이 많은 것 같다. 선진 외국에서는 정부가 부자들에게 감세를 해주려면 두 손 들고 반대하는데, 우리나라는 부자가 정부에게 부자 감세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우리나라 재벌들도 얻은 소득을 알아서 잘 분배할 때가 된 것 같다.

<김승연 서문교회 담임목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