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 꿈 채워주기에…”
“청소년들 꿈 채워주기에…”
  • 김미진기자
  • 승인 2011.08.24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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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순 프로덕션 디자이너
▲ 전주영상위원회가 진행한 ‘2011 전주 영화세트제작 마스터링 워크숍’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는 정영순(오른쪽에서 두번째) 프로덕션 디자이너와 워크숍 참여 학생들. 김미진기자mjy308@

한 편의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엔딩크레딧. 수백여명을 훌쩍 넘는 스텝진의 역할은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일반인들은 ‘영화’하면 단순히 연출과 촬영, 편집을 떠올리지만 무수히 많은 제2의 직업군이 존재한다. 영화세트제작도 그 중 하나다.

지난 16일부터 26일까지 전주영화종합촬영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2011 전주 영화세트제작 마스터링 워크숍’. 전주시, 영화진흥위원회, (사)전주영상위원회가 지원하는 이번 워크숍은 특화된 분야에 접근이 어려웠던 지역 영화학도는 물론 미술학도들에게 알찬 경험이 되고 있다. 내일의 영화미술감독을 꿈꾸는 스무살 청년 17명은 그렇게 꿈과 희망에 한 발 다가서고 있는 모습이다.

그 속에서 이들의 창작열정에 불을 지피며 워크숍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영순 프로덕션 디자이너(세트미술 감독)를 23일 만났다. 더위가 누그러지는 처서라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여전히 땀이 뚝뚝 떨어지는 그날에도 정 감독은 학생들과 영화세트제작 삼매경이다. 영화 ‘쇼쇼쇼’ 일부 장면에 사용된 세트 재현에 들어간 학생들은 정 감독의 지도 아래 세트 한쪽 벽면에 재미있는 캐리커처(caricature)를 그려 넣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무대장치 혹은 무대작화가로 아주 단순한 개념으로 세트를 짓고 그 위에 색을 입히는 작업을 하는 역할 정도로 인식됐던 분야가 이제는 많이 전문화됐다. 그동안 영상자료로만 봐 왔던 영화 세트가 지어지는 모습과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팁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 된 대학생들의 만족도 또한 높았다.

정 감독은 “이론수업에서도 아이들에게 역동적으로 참여하고 생각을 같이할 것을 주문한다”면서 ‘참관’과 ‘참석’이 아닌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영화 제작편수가 줄어들고 취업문도 바늘구멍인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영역과 역량이 큰 스무살 청년들의 이상을 꺾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 또한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던 무대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연고도 없는 독일행을 택했었기 때문이다.

순창 출생으로 전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일찌감치 음반자켓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했다. 핑클, 젝스키스, 임창정 등 90년대를 풍미했던 유명 가수들의 일을 맡아 하면서 어린 나이에 꿈을 이뤄버린 정 감독. 쳇바퀴 도는 것 같은 단조로운 일상이 지겨워졌던 그는 우연히 영화포스터에 접근한 후 진로를 바꿨다. 지난 2009년 영화미술의 역사가 시작된 독일 뮌헨에서 석사를 마치고 온 뒤로 영화세트제작 외에도 전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지역의 영화인력 양성과 네트워크 구축에 열정을 쏟고 있다.

“능동적인 입장에서 하려고만 한다면 기회는 늘 찾아오죠. 대학 강단과 워크숍 등에서 여러 아이들을 만나지만 개개인별로 흡수하는 역량이 달라요. 도전의식이 강한 친구들이 결국 살아남죠.”

아직은 아무것도 없기에 가능성이 큰 친구들이 자기 자신의 틀을 만들어 가두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정 감독. 학생들이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을 때, 이상적인 것에만 함몰되는 것을 경계하지만 꿈에 대한 도전은 계속되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의 경험이고, 그가 마주했던 상황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올 여름에는 그 어느 해보다 바빴다. 이번 워크숍 외에도 최근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초청돼 화제를 모았던 연극 ‘각시, 마고’의 무대디자인에도 힘을 보탰기 때문. 곽병창(우석대 교수) 연출가와의 인연으로 붓을 들고 작업에 들어간 정 감독은 무대의 주요 장치였던 빌딩부터 자동차 아이디어, 각시의 옷과 신발까지 디테일한 부분까지 빠뜨리지 않고 디자인했다. 또 우석대에서 열린 청소년영화캠프의 책임강사로 활동해 청소년들이 단편영화 한 편을 만들어 내는데 지도를 아끼지 않는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고.

앞으로도 전주에서 이런 일 저런 일을 맡아 진행해보고 싶다. 서울과 전주에 적을 두고 있어 항상 짐을 싸놓고 떠날 태세를 갖춘 모양새지만, 고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유대는 늘 즐겁다. 전주에서 처음으로 영화세트교육을 오픈해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만큼, 영화촬영의 도시 전주에 영화관련 제2의 직업군이 많이 배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와 관련 정 감독은 “영화세트교육을 시작한 것도 좋지만 그 다음 단계가 더더욱 중요하다”면서 “학생들이 직업으로 연계되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가교역할 등 인프라 구축에 지자체와 대학 등 각계의 관심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미진기자 mjy308@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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