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지망생들에게 고함
정치 지망생들에게 고함
  • 김승연
  • 승인 2011.08.11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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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대한민국 근대사에 아주 중요한 해이다. 299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고, 제18대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제에 앞으로 정치를 꿈꾸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청문회를 의식해서라도 죄 짓는 일(군 미필,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전입, 원정해산 등)을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어느 날 저녁, 두 친구가 미국 뉴저지 콜드웰 거리 뒷골목에 위치한 유흥가를 배회하고 있었다. 이유는 한 번 맛들인 세속적인 쾌락을 만끽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갑자기 네거리에서 발을 멈추고 오뚝이처럼 우뚝 서버렸다. 앞서간 친구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야! 너, 거기서 뭐해. 빨리 와.” 길을 멈춘 친구가 대꾸했다. “야! 나, 도저히 못 가겠다.” 결국 앞서 가던 친구는 친구와의 동행을 포기하고 가려던 유흥가를 향하여 발길을 재촉하여 사라져 갔다.

앞서간 친구는 부모가 보낸 학비를 가지고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허구한 날 친구들과 함께 유흥가를 배회하며 방탕의 길을 걷고 있던 현대판 탕자였다. 그러나 네거리에 우뚝 선 친구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학생이었다. 어쩌다 친구를 잘못 사귄 바람에 세속에 물들어 이성을 잃고 한동안 방탕했던 것이다. 이 친구가 길을 가다 갑자기 멈춰선 것은 네거리 건너편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글과 함께 빨간 네온사인이 밤거리를 번쩍거리고 있었다. “죄 값은 사망이라”(신약성경 로마서 6장23절)

그는 그 붉은 글씨를 보는 순간 가슴이 꽉 메여 오는데 숨이 막힐 것 같아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친구를 떠나보내고 길을 건너 곧장 교회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은 모든 잘못을 눈물로 회개하고 집으로 돌아와 마음을 잡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그의 집은 가난했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형편이기에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졸업 후 버펄로에 있는 한 법률회사에 사무원으로 취직하여 근무하면서 틈틈이 고학으로 법학을 공부했다. 그리하여 1859년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민주당에 입당했다. 1881~2년까지 버펄로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부정부패의 척결자로서 명성을 얻는다. 그 후 1882년에 뉴욕 주지사로 선출된다. 어떤 정치적인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던 그가 1884년 마침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1886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민주당 출신으로서 제22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리고 23대를 건너뛰고 제24대에 재선된다. 이 사람이 바로 ‘스테판 그로브 클리블랜드’(Stephen Grover Cleveland, 1837.3.18 미국 뉴저지 콜드웰 ~ 1908.6.24 뉴저지 프린스턴)이다.

클리블랜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보도된 신문이 미국 전역에 배포되었다. 물론 휴스턴 근처 감옥에도 그 신문은 배달되었다. 그리고 사형 집행 날만 기다리고 있는 한 사형수의 감방에도 전달되었다. 조간신문을 펼쳐든 한 사형수의 얼굴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는 신문에 대문짝처럼 쓰인 글씨를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다. “클리블랜드 미국의 제22대 대통령에 당선되다.” 그는 급하게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는 신문을 움켜쥔 채 머리를 벽에 처박으며 황소울음을 터뜨린다. 그가 바로 선택의 기로에서 간발의 차이로 유흥가로 향한 후 돌아오지 아니한 탕자 친구였다. 그는 머리가 좋은 친구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고, 개업하여 많은 돈을 벌었지만, 결국 뇌물수수와 살인 범죄에 관련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휴스턴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클리블랜드는 현재 미국 뉴저지의 프린스턴 대학 교정에 그의 동상이 우뚝 서있다. 그가 은퇴한 후 그 대학에서 공공 문제를 강의했기 때문이다.

인생은 선택의 네거리와 같고 갈림길과도 같다. 오늘의 우리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길은 학교에도 있고, 거리에도 있고, 친구들 중에도 있고, 교회에도 도사리고 있다. 아울러 선택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나 주어져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자신이 져야 하고, 결국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갈라놓는다.

그러므로 가장 행복하고 보람 있는 인생이 어떤 인생이냐 하고 묻는다면 그건 돈이 아니고, 명예와 권세가 아니다. 그렇다고 학문과 권세도 아니다. 물론 건강도 아니다. 바로 한 점 후회 없이 사는 인생이다. 악한 일과 죄는 인간에게 막대한 손실과 후회만을 안겨다 줄 뿐이다. 그리고 그 죄 값은 항상 어디서나 사망이다. 그런 사망의 길을 오늘날 분별력 없는 청소년들이 걷고 있다. 물론 때로는 방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육체가 성장하고 지성적으로 옳고 그름의 사리를 판단할 때쯤 되면 그것이 죄악이냐, 선이냐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고, 죄와 악의 정도 차이를 구별하며 사물의 가치 기준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생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선택을 잘 해야 한다. 한 번의 선택은 영원한 행복이기도 하고, 영원한 불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필자는 방탕의 길을 걷던 두 친구의 순간의 선택이 영원한 갈림이 되었다는 내용의 실화를 통해 오늘의 나의 친구들인 대한의 청소년들에게 선택을 잘 하라고 권면하고 싶다. 그리고 전무후무한 지혜의 왕 솔로몬이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구약성경 잠언 1장10절)고 한 잠언도 잊지 말기 바란다.

김승연<서문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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