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세상을 바꾼다
분노가 세상을 바꾼다
  • 김우영
  • 승인 2011.06.28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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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200만부 이상 팔리고, 20개국에 번역 소개된 책 ‘분노하라’가 최근 화제이다. 이 책은 나치 독일 치하의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였고, 종전 후에는 외교관으로서, 유엔 세계 인권 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한 바 있고, 퇴직 후에도 인권과 환경문제에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과거의 레지스탕스 노전사 스테판 에셀이 93세의 나이에 그가 인생을 통해서 체득한 지혜로, 프랑스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아낸 책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이다.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평의회가 해방된 프랑스를 위해 입안하고 계획한, 자유와 부의 민주적 분배,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복지에 대한 권리와 같은 이상들은 금권과 경제적 불의에 대한 분노의 산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이 반세기만에 무너지고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다시 금권이 지배하는 사회로,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심화되고, 오로지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경쟁하는 사회로 전락하고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부디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이상을 부활시키고, 전파해달라고 외친다.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

저자의 호소는 프랑스에서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까지 전파되는 느낌이다. 우리가 애써 싸워 확보해온 시민의 자유와 평등, 경제적 민주주의가 도전받고, 위협받는 현실이 어디 프랑스에서만 일까? “분노하라”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시위는 지난 달 15일 마드리드에서 시작된 이후 급속도로 확산되어, 이 달 19일에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의 주요 도시에서 20만 명이 시위를 벌이며, 높은 실업율과 금융위기를 초래한 정치가, 은행가들의 책임을 촉구하였다. 이들의 운동은 비슷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를 포함해 유럽 각지에서 동조 시위를 불러온 바 있다.

스테판 에셀에 의하면, 우리가 분노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 지도자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모른 체해서는 안 되며, 우리 사회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의 독재에 휘둘려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무언가에 분노할 때, 비로소 그때 우리는 힘을 가진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스스로 역사의 흐름에 참여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오늘 날 사회는 너무 복잡해져서 분노의 대상과 이유가 예전보다 덜 명확해 보일 수 있다. 누가 명령하며 누가 결정하는지.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흐름을 샅샅이 구별한다는 것이 늘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도 분명 분노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제대로 찾아야 한다. 찾을 수 있다. 반면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할 수 있어, 내 앞가림이나 잘해야지.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의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분노할 수 있는 힘, 참여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분노가 참여의 의지인 이유는, 스테판 에셀은 분노가 끓어 넘치는 상태인 격분과 분노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격분의 결과는 폭력을 수반할 수 있다. 그러나 폭력은 희망에 등을 돌리는 일이다. 폭력보다는 희망을,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한다. 격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용납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스테판 에셀은 현대 사회는 서로 이해하고 인내한다면, 충분히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래는 다양한 문화가 서로 화해하는 시대이며, 비폭력이라는 길을 통해 인류는 다음 단계로 넘어 가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에 대해서 분노를 위한 분노를 선동하고 있다는 폄하도 있지만, 자유와 평등, 경제적 민주주의를 추구해 온 우리 사회의 실천에 대한 어떤 지침이 될 만하다. 우선 우리 사회가 성취하고자 하는 이상이 견고한 반석에 놓여 있다기 보다는, 항상 위협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위협에 대한 저항에 대해서 시민들은 서로 고민하고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서 분노하고, 어떻게 분노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화두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스테판 에셀이 분노하라고 외치는 프랑스 사회의 현실은 다른 유럽 사회에서의 현실,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분노해야 할 현실은 아무래도 우리가 더 많지 않을까? 청년 실업, 한계를 넘어선 대학 등록금, 고령화에 따른 노인 복지 문제, 도덕적 해이를 넘어선 저축은행 비리 사건. 공직자의 부정 부패 등. 우리가 분노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으리라고 보이지 않지만, 증오나 체념이 아닌 분노를 통해서, 평화적 봉기를 통해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귀담을 만하다.

김우영 <전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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