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우리 꽃이 피는 학교
59. 우리 꽃이 피는 학교
  • 문창룡
  • 승인 2011.06.1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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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깊어간다. 뿐만 아니다. 초록 숲의 나뭇가지마다에는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달려있다. 그중에 박달나무 하얀 꽃이 인상 깊다. 수만 마리 나비들이 떼를 지어 나무에 앉아있는 듯하다. 이러한 우리 꽃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조국의 강산(江山)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신화(神話)에 의하면 단군이 신단수(神檀樹) 아래 고조선을 열었다고 하는데 그 신단수가 박달나무다. 단군의 단(檀)은 박달나무의 한자 표기다. 박달나무는 단단하기로 유명해서 나무를 베려고 도끼로 찍으면 도끼날이 부러질 정도다. 뿐만 아니라 물에 가라앉을 정도로 무겁기까지 하다. 그러나보니 우리 조상들은 박달나무로 방망이, 홍두께, 방아, 떡살 판, 수레바퀴 등 유용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썼다.

박달나무는 쓰임새뿐만 아니라 꽃이 참 아름답다. 고운 우유 빛깔을 하고 있으며 네 장의 넓은 꽃잎의 자태에는 기품이 배어 있다. 한 두 송이만 피는 것이 아니라 군락을 지어 떼로 피기 때문에 관상효과 또한 뛰어나다. 감촉이 부드럽고 질감이 뛰어나 덕스럽고 포근한 어머니의 느낌을 준다. 꽃이 귀한 6월에 피기 때문에 희소성까지 있다.

박달나무 꽃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우리 산에 예부터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었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자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달나무 꽃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 하물며 어린 학생들이 박달나무 꽃을 접할 리가 없다.

사실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은 문호개방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다소 성급하게 또는 일방적으로 다른 나라의 교육방법이 도입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10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타나고 있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하는 이유를 실감한다. 교육의 내용면에서도 그렇지만 환경적인 점에서도 그렇다.

아주 옛날부터 생활과 밀접했던 박달나무가 학교 정원에 없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꽃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관상수로써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뛰어난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정원에 박달나무와 같은 우리 나무보다는 칙칙한 서양 수종이나 정체불명의 나무들이 학교 정원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근대교육 100년을 돌아보며 우리가 반성해야 할 점이다.

우리 나무를 학교 정원에 심는 것은 우리 정신을 회복하는 작은 몸짓일 수 있다. 관상수로 사용할 아름다운 우리 나무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팝나무, 배롱나무, 층층이 나무, 자귀나무, 백당나무, 때죽나무, 모감주나무 등 이름만 들어도 친근한 나무들이다. 이 나무들은 학교 정원에 아주 잘 어울리는 관상수이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야생화 화단을 조성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몇 년간 이 사업을 위해 학교에 의도적으로 예산을 지원한 적도 있었다. 매 발톱 꽃, 홀아비 바람 꽃, 할미 꽃, 깽깽이 풀 등 이름도 정겹고 예쁘기도 하다. 이들 야생화는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야생화를 넘어 이제는 우리 나무를 학교 정원에 심어야 한다. 우리 나무와 꽃을 보며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를 꿈꾸는 것이 어색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산재한 교육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학교에 하얀 꽃이 피는 박달나무를 몇 그루 심어 보는 여유로움을 갖는 것을 호사스런 생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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