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본 전북정치> <14> 自强不息(자강불식)
<사자성어로 본 전북정치> <14> 自强不息(자강불식)
  • 박기홍
  • 승인 2011.04.12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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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 키우는 지방의원들

<14>自强不息(자강불식)-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는 뜻이다. 광역의원의 입지는 좁다. 오죽하면 광역단체 안에만 큰소리친다고 스스로 푸념할까. 그래서 광역의원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도전에 나선다. 단체장과 국회의원을 염두에 두고 부단히 힘을 기른다. 광역의원의 자강(自强)을 위한 불식(不息)의 세계를 진단해 본다.

“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는가?”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이다. 태어날 때 모든 사람은 평등해서 노력하면 왕후재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전북 정치권에는 그러나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 지난 91년 3월 26일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후 장장 20년이 흘렀지만 지방의원의 국회 진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도의원은 국회의원의 씨가 아니라는 법은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제후의 씨는 따로 있다고 강변하는 듯하다. 다음의 두 장면은 이런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1. 2008년 2월 구민주당 소속 황 현 도의원이 국회에 진출하겠다며 사직서를 던진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역주민의 손과 발이 돼 뛰었고 여론조사도 타후보에 뒤지지 않았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경선 때부터 상향식 공천이 유행병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황 전 의원의 배짱은 공천후보 서류심사에서 무참히 짓밟힌다. 후보경선에 나서지 못하고 청운의 꿈을 접어야 했다.

#2. 같은 시각 열린우리당은 박재승 공천 심사위원장이 저승사자로 불리며 무차별적 공천 칼질을 해댔다. 시의원-도의원 성공의 엘리베이터를 탄 심영배 전 도의원이 국회의원 출사표를 던졌다. 지역구를 촘촘히 다져와 당원, 대의원, 일반국민 참여의 상향식 후보공천을 자신했던 것이다. 개혁공천으로 국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박 위원장은 “도의원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면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한 마디 내뱉었다. 그는 ‘지방의원의 국회의원 공천배제’ 원칙을 정치권에 남겨 놓았다.

2008년 도의원 잔혹사 이후 3년이 흐른 지금.

재선급 이상 도의원들은 저마다 단체장 출마와 여의도 행 금배지 도전의 야망을 다시 키우고 있다. 현직 42명의 도의원 중 25%에 해당하는 10명 안팎은 다음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고, 4∼5명은 ‘여차 하면’ 내년 총선에 도전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과거엔 ‘패기와 용기’가 전부였던 무모한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도의회 의장 선거의 깃발 중엔 “국회 진출의 터를 닦겠다”는 말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4년 지난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중앙 정치권에 한쪽 줄을 대면서 지역 토박이 이점을 살려 은밀하게 조직을 넓혀 가는, 이른바 ‘실효적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는 분위기다. ‘호·창·성’으로 불리는 도의회 김호서 의장, 유창희 부의장, 김성주 환복위 위원장 등 도의원 3인방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린 가운데 황 현 전 의원이 때를 기다리며 발걸음을 서울 여의도 국회로 향하고 있다. 마치 도의회의 국회 도전사를 새로 쓰겠다는 듯, 각오도 다진다.

광역의원의 위치는 어정쩡하다. 기초의원과 국회의원 중간에 끼어 자칫 영토도 없이 유랑할 수 있다. 그래서 매사 몸조심이다. 4.27 재보궐 선거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민주당 3인방 손학규 대표,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면서 정치적 야망을 노출하지 않는다. 중앙당 내 파워 게임이 완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칫 경거망동의 정치적 행동이 대사를 그르칠 수 있는 판단에서다.

대신 지역 국회의원 호위병에 불과했던 과거 정치 신분을 뛰어넘기 위해 LH 본사 유치, 대형마트 견제 등 지역 현안에 자신의 목소리를 불어 넣는다. 11일 오전 도의회 광장에서 열린 ‘LH 분산배치 염원 마라톤 출정식’ 행사에서 민심을 의식한 도의원들의 의기투합이 대표적 사례랄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전주 완산갑 출마를 계획하는 유창희 부의장은 14일부터 시작하는 청와대 릴레이 1인 시위를 주도하고 삭발투쟁도 동참한다는 방침이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우리가 남인가’라며 국회입성 목표 달성 때까지 서로 싸우지 말자는 약속도 은밀히 해놓고 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전북 정치권의 불문율을 깨기 위해선 ‘뭉쳐야 산다’는 정글의 법칙을 신주처럼 모신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 사촌이 좋아요’. 유행가 가사처럼 현역 단체장과 국회의원이 예산을 따기 위해 서울에 머무는 틈을 타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역을 돌며 ‘상향식 공천’에 대비하는 게 오늘날 광역의원의 현주소다.

지역위원회의 실핏줄로 비유되는 시의원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고, 크고 작은 온갖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김태호 전 경남지사, 3선의 권오을 국회 사무총장 등이 모두 지방의원 출신이었다고.

박기홍기자, 서울=전형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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