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로그램은 요즘 오락 프로그램의 대표적 트렌드 중 하나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지만, 기존 아마추어들끼리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는 달리 500명의 시청자평가단이 참가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순위를 매겨 꼴찌를 한 가수는 탈락시키고, 탈락한 자리에 다른 가수가 참여해 경쟁을 계속하겠다는 구도이다. 그러나 평가단 심사 결과 꼴찌를 한 가수의 탈락을 참가자들의 요청으로 제작진이 번복하고, 이 가수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어 본래의 서바이벌 게임의 원칙이 뒤집히면서 문제가 터진 것이다.
기존의 아마추어 대상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시청자의 관심과 참여를 높일 수 있다는 면에서 방송사에게는 아주 매력적이다. 식상하지 않은 새로운 얼굴들이 매회 등장하면서 숨 막히는 경쟁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결과들이 시청자들에게 스릴과 감동을 가져다준다. 이에 따라 우후죽순 식으로 방송사마다 여러 분야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들 프로그램과는 나름 차별성을 갖고 시작한 것이 ‘나는 가수다’였으나 시작 한 달을 못 채우고 프로그램이 삐걱거리고 말았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매체 이용자인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면서 프로그램의 제작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실증적 사례를 한 가지 더 확인하게 되었고 동시에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경쟁시스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어쩌면 경쟁이라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되는 경쟁 열기는 내신 경쟁에서부터 시작하여 대학 입시, 그리고 대학에서의 상대 평가로 이어진다. 그리고 졸업 후 사회에 나오면서부터는 그야말로 무한 경쟁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씁쓸하지만 경쟁에서 승자와 패자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
흔히들 우리 사회를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라고 얘기한다. 한번 경쟁에서 낙오되면 영원한 패자로 낙인찍히고 승자의 반열에 낄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그래서 진골이니 성골이니 하는 농담 아닌 진담이 있는 것도 패자부활을 인정치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리라. 단판 승부로 결정 나는 우리의 경쟁 시스템은 지나치리만큼 잔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한한 가능성의 인재들을 놓쳐버리는 사회적 손실을 양산하고 있다. 경쟁은 남과의 비교에서 자신을 독려하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진정한 발전을 위한 동인(動因)은 자기 성찰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말이다.
이번 논란이 되었던 ‘나는 가수다’도 지나친 온정주의로 방송 프로그램의 의도를 벗어나기 보다는 실력 있는 탈락자들을 위한 패자부활전의 마당을 마련해줌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잠재적 승자(勝者)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보다 희망적인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나저나 집 밖에서나 집 안 TV 등 온통 서바이벌 게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휴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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