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신뢰사회의 조건
2011년, 신뢰사회의 조건
  • 김흥주
  • 승인 2010.12.3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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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대학 교수들이 2010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장두노미(藏頭露尾)’를 꼽았다고 한다. 머리는 처박았으나 꼬리가 드러난 모습이니 뭔가 숨기려 하지만 실체는 이미 다 알려진 상황이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2010년.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면 거짓, 허구, 위선, 강압, 분노, 갈등과 같은 부정적 어구들만이 머릿속에 맴돈다.

천안함은 침몰했지만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4대강 공사는 진행되고 있지만 사회적 합의는 없다. 무상급식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누구 하나 진정으로 보편적 권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연평도 포격은 70년대 냉전 상황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끊임없이 국격(國格)을 이야기하고, 공정사회를 부르짖는다. 대통령은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부족을 질타하고 있다. 여당 대표는 자연산을 즐기면서 세밑 정치행사로 양로시설을 찾는다. 군복을 차려입은 아저씨들은 60년대 쿠데타 상황에서나 봄직한 선글라스를 끼고 거리를 활보하다 못해 조계사에 난입한다. 지하철에서 공원에서 전쟁불사를 외치는 할아버지들이 너무나 많다. 그냥 두면 너무나 예쁜 강변 들길들이 ‘시멘트’로 도배질 당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교수들은 위선을 이야기하고, 시민사회는 불통과 강압에 분노하며, 청년들은 앞날을 걱정하고, 서민들은 생존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미래학자들은 이런 사회를 전형적인 ‘저신뢰 사회’라고 한다. 한국사회의 신뢰지수는 선진국보다 크게 낮다는 통계는 많이 나와 있다. 2005년 세계가치관조사 결과 “낯선 타인을 믿는다”는 한국인은 30.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68%인 스웨덴은 물론이고 52.3%인 중국, 52.1%의 베트남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다. 특히 국회와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각각 10.1%, 28.8%에 그쳐 OECD 평균(각각 38.3%, 34.6%)을 크게 밑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9월 조사한 한국의 신뢰지수는 10점 만점에 5.21점으로 OECD 29개국 가운데 24위이며, 사회적 자본 수준은 22위로 모두 최하위권이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한 나라의 번영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덕목이자 사회적 자본을 ‘신뢰’라고 강조하였다. 공장 굴뚝 연기보다, 강변 시멘트길보다, 신형 원자로보다, K9 자주포보다 강력한 한국사회의 미래 원동력은 바로 이러한 신뢰사회를 만드는 것에서 나온다.

2011년이 시작되고 있다. 항상 그렇지만 새해가 시작되면 우리는 희망과 꿈을 이야기한다. 내가 그려보는 새로운 희망은 신뢰사회 만들기 그 자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평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세계적 추세는 갈등과 반목보다 통합과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굳이 이런 원칙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전쟁은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앗아가 버린다. 이건 우리 선배 세대들에게도, 후속 세대들에게도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상대편의 입장이 되어보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동서고금의 지혜를 되살릴 때다.

둘째, 생태를 이야기해야 한다. 아무리 친환경적 개발이라 해도 직선 중심, 시멘트 중심 개발은 생태적이 될 수 없다. 백번 양보하여 가치창출 차원이라 해도 시멘트보다는 문화 자원, 생태 자원이 더 의미가 있다. 세계가 근대의 강변 시멘트를 뜯어내고 있는데, 아직도 시멘트 공사를 최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범죄다. 이를 뜯어내야 할 후손들의 원망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셋째, 보편적 복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지난 2002년 대선이 세대정치였고, 2007년 대선이 개발정치였다면 2012년 대선은 복지정치가 될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마다 복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들의 인식은 언제나 국가의 시혜 차원에서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에 머물러 있다. 최근의 무상급식 논쟁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복지는 보편적 ‘권리’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복지가 삶이 된다.

신뢰사회는 나와 우리보다 남과 그들을 배려할 때 만들어진다. 이런 점에서 2011년 희망의 사자성어로 ‘역지사지(易地思之)’도 괜찮을 듯하다. 한번쯤은 되돌아보고,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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