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적 엽관주의 이대로 두고봐야하나
망국적 엽관주의 이대로 두고봐야하나
  • 유춘택
  • 승인 2010.12.23 14: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권획득에 주동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을 고위직에 오르게 하고 요직에 앉히는 일은 우리뿐 아니라 소위 선진국에서조차 자주 보아온 전근대사의 일면이다. 그럴 때마다 수많은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임원 교체가 이루어졌고 능력보다는 정실인사의 단행으로 행정능률은 저하되고 관기의 문란은 극에 달했었다. 소위 위인설관(爲人設官)으로 인한 행정의 지속성 및 안정성이 위협받고 궁극적으로는 부정부패가 만연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민주헌정의 역사출발이 환갑을 훌쩍 넘어 최근에는 경제적으로도 세계 속에서 부러움의 대상으로 일취월장한 나라임을 우리 스스로 자부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무원의 정실인사는 심지어 절대군주제하에서도 행해졌다. 그러나 군주제에 대항하여 의회정치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정당이 국왕의 관리를 의회의 봉사자로 바꾸기 위하여 대량의 엽관(獵官)이 일반화되었다. 엽관주의(spoils system)는 “승자에게 전리품이 귀속된다”는 사상으로서 정권을 장악한 자가 자기 진영에 속하는 자들에게 전리품(戰利品)으로서의 관직을 분배하는 인사방식이다.

이 관행이 대대적으로 전개된 것은 미국이었다. 1801년 미국의 3대 대통령에 취임한 민주공화당의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대통령의 임명관직 중 25%를 민주공화당원으로 충원시켰다. 그 후 1829년 7대 대통령에 당선된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이 “엽관제를 공직의 민중에 대한 해방과 공무원에 대한 인민통제의 역할을 지닌 것”이라고 강조한 뒤로 엽관제의 관행이 확립되었다. 미국의 엽관주의는 1865년을 정점으로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1년 이승만 정권에서 자유당의 창당을 계기로 엽관제가 대두되었는데 지역 연고주의 인사정책으로 인해 많은 폐해가 야기되었다. 특히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과 1980년대에 등장한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집권하면서 영남 인사들이 국가의 요직을 차지하고 국정을 농단하였다. 14대 대통령 김영삼은 고등학교 후배를 검찰총장에 임명함으로써 영남 편중 인사는 극에 달했다. 대통령이 사정과 법조의 핵심라인을 직계 후배들로 채운 의도는 임기 막판까지 레임덕을 막고 권력을 유지하려면 믿고 맡길 사람은 고향 후배밖에 없다는 불안 심리와 초조감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15년 만에 다시 권력 말기증후군을 떠올리게 하는 '영남 독식' 인사가 재현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모교 출신의 후배를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함으로써 3군 참모총장 3명 모두 영남 출신으로 임명했다. 우리국군은 국민의 군대가 아니라 ‘영남군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군 수뇌부는 영남출신으로 빼곡하다. 요직에 후배나 고향 사람을 심어놓지 않으면 안 되는 말기증후군을 연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엽관주의 인사는 부패와 비리, 불필요한 공직남발, 이로 인한 재정낭비 및 기강해이를 가져오는 등 병폐가 많았다. 이를 극복하고 행정의 투명성과 능률화를 기하기 위하여 19세기 중엽이후 각국에서는 엽관주의 인사행정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인사행정인 실적주의(meritocracy)를 택했던 것이다. 실적주의 본질은 개인의 능력과 실적에 따라서 인사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공무원들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고 그들의 신분도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실적주의에서는 능력과 실적 및 정치적 중립성이 인사의 준거가 되기 때문에 업무의 능률과 공평무사한 공무수행이 가능하다. 물론 지나친 능력, 실적위주의 인사행정은 실적만을 앞세우는 전시행정의 우려와 구성원 간, 하부조직 간 협력보다는 필요 이상의 경쟁과 갈등이 생길 소지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인재를 선발하는 데는 능력과 실적을 중심으로 하되 정치현실과 사회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엽관주의적 인사요인은 배제되어야할 것이고 지도자는 이 나라의 주인인 전 국민을 위하는 불편부당한 마음으로 민주정치의 큰 그림을 그리는 용기를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