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반환돼야할 외규장각 의궤
마땅히 반환돼야할 외규장각 의궤
  • 유춘택
  • 승인 2010.11.2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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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조선시대 외규장각(外奎章閣)의 건물이 복원되었다. 물론 당시의 화려함과 품격은 갖추지 못했다하더라도 조선 후기 문화의 정수를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이 되살아 난 셈이다. 이제 외규장각 도서, 즉 의궤(儀軌)로 그 안을 채울 때가 되었다. G20 정상회의 기간에 한국과 프랑스 양국 정상이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를 5년 단위로 갱신해 사실상 영구대여하기로 합의한 것에 대해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조직적 반발이 시작됐다고 한다. 우리는 사실상 ‘영구대여’가 아닌 ‘영구반환’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프랑스국립도서관은 자국의 조상들이 약탈한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우방국의 자존심을 희롱하는 것은 그들이 내세우는 ‘문화대국’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행태다.

조선왕조는 기록문화의 전성기로서 통치 행위에 대한 모든 기록이 제도화되어 있었다. 가령 국왕의 비서기관인 승정원에서 왕명의 출납을 매일 기록한 『승정원일기』를 작성하였고, 중요한 정책과 인사이동을 『조보(朝報)』에 실어 지방관들에게 전달했으며, 왕이 죽은 뒤에는 종합적인 통치기록을 작성한 실록을 편찬하였다.

그런데 왕실의 주요 의전 행사는 세밀한 집행보고서를 따로 작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의궤이다. 의궤는 유교적 의식 행사뿐만 아니라 도시건설, 각종 토목공사, 왕실 족보나 실록, 국조보감 등 편찬사업, 보인(寶印; 국새와 각종 도장) 제조 등 주요 국가사업 때에도 만들었다. 따라서 우리는 의궤를 통해 의식의 모습과 각종 사용 도구 등 궁중생활사와 풍속사 등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의궤 중에서 특별히 국왕이 친히 열람한 어람용(御覽用)은 대부분 외규장각에 보내졌다. 어람용 의궤는 국왕이 열람한 후에 규장각에 보관하다가 1781년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설치한 후에는 이곳에 옮겨 보관하였다. 어람용 의궤는 종이로 고급 초주지(草注紙)를 사용하고, 해서체로 정성들여 글을 쓴 다음 붉은 선을 둘러 왕실의 위엄을 더하였다. 또 장정 또한 호화로워 ‘놋쇠 물림(경첩)’으로 묶었으며, 표지는 비단으로 화려하게 만들어 왕실의 품격을 한껏 높였다.

더불어 의궤 속을 한 장 한 장 펼치면 품위와 격이 느껴지는 종이와 당대의 명필들이 정성들여 쓴 글씨, 그리고 마지막에 그림으로 수놓은 화려한 반차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어람용 반차도는 가마나 의장물의 정밀함, 인물의 눈매와 수염까지 뚜렷한 섬세함 등 혼신의 힘을 다했던 당대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프랑스군의 침공으로 외규장각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강화도에 주둔하였던 프랑스군은 조선군의 강렬한 저항으로 퇴각하면서 외규장각에 보관되었던 우리 문화의 보고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은괴 19상자와 함께 그들의 눈을 자극한 것은 채색 비단 장정에 선명한 그림으로 장식된 어람용 의궤들이었다. 프랑스군이 외규장각에 소장된 각종 도서 중에서 유독 의궤류만을 집중적으로 약탈한 것은 화려하고도 품격 있는 의궤의 장정과 비단 표지, 그리고 의궤에 그려진 채색 그림이 지닌 가치와 예술성이 벽안의 눈에도 번쩍 띄었기 때문일 것이다. 189종 340여 책의 의궤는 이들의 퇴각과 함께 약탈당했으며, 외규장각은 화염 속으로 사라져 흔적만 남게 되었다.

현재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조선왕조의궤'는 2007년 6월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었다. 297종의 외규장각 의궤는 여전히 선명한 글씨와 아름답게 장식된 장정 등을 유지하면서 남아있는데, 이처럼 의궤가 원형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조선시대 의궤 자체가 뛰어난 재질의 종이로 만들어졌고, 의궤에 첨부된 그림의 물감은 천연의 광물이나 식물에서 채취하여 그 색체의 생명력이 오래갔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나라가 어찌 프랑스 한 나라 뿐이겠는가? 우리의 의지와 다르게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외국에 가 있는 경우가 밝혀진 것만도 수십만 점이 넘는다고 하니 창피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이때 우리의 옛 문화가 얼마나 훌륭했는가를 자랑하기도 하면서 의연한 자세로 우리의 문화적 재산을 되찾는 일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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