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 내장산의 비경
<독자수필> 내장산의 비경
  • 이수경
  • 승인 2010.10.1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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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의 비경

전주전라초등학교 교사 소순원

쫓기는 일상에서 홀연히 벗어나 상상의 나래까지 마음껏 펼쳐낼 수 있는 여정을 탐색하다보면 가을철의 변신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내장산의 산행이 떠오릅니다.

백두대간이 태백의 등줄을 누비다 소백의 능선을 타고 노령의 날줄로 뻗어나 호남과 나주평야의 곡창을 양생하며 한반도 서남의 내륙을 장악한 내장산 넉넉한 당신의 품안에서 소중한 여가를 즐기렵니다.

내장의 산자락 굽이굽이마다 한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빛을 낱낱이 거두어 엮어온 여름날의 끝 모를 인내를 소슬 대는 가을바람 앞에서 저녁노을처럼 슬그머니 꺼내놓은 색상의 향연이 내장산의 단풍잔치일까요?

풍성한 채운을 둘러쓴 갖가지 나무들이 맑은 가을의 햇살아래 가지마다 색상을 흘리어 재주껏 치장한 몸매를 산들바람에 나부끼며 단풍의 묘미를 음미하려는 풍류객들을 환호하게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같이 아이들은 천사같이 단풍의 세상이 너무나 좋아 꽃단풍 하늘대는 화려한 별천지를 하염없이 흐르는 인파에 떠밀려 갈듯 말듯 머뭇거리면 같은 것 같으면서도 천차만별인 단풍나무들의 군상들이 다가섭니다.

고도가 높아진 계곡에 들어서면 산상을 물들인 색감은 더욱 짙어져 조용히 일렁이는 파도 같은 꿈속의 진풍경들이 수만 마리의 나비 떼처럼 어우러져 춤추는 환상을 연출합니다.

수만 가지 형상으로 흔들리는 단청들의 환상에 넋을 잃고 흐르는 인파에 몸을 맡기며 걷노라면 건너편 굽이에서 꿈틀대던 색상대가 눈앞에 펼쳐지는가 싶었는데 이번엔 어느새 천사들의 날개옷 같은 무늬의 단풍들이 흔들립니다.

연노랑 진노랑 연주황 진 주황 연분홍 진분홍 빨강 진홍 자주의 고급스런 빛깔로 물든 수만 가지 모양의 나뭇잎 이파리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색상의 나래와 패션의 향연을 재주껏 벌리고 있습니다. 단풍의 아름다움에 취하며 간간이 마주보고 웃기만 하는 연인들은 색다른 단풍의 나래들이 펼쳐질 때마다 찰카닥 찰칵 무수히 널린 단풍의 풍치 안에서 예쁘게 웃고 있는 잊지 못할 추억의 주인공으로 남았습니다.

흐르는 인파에 걸음을 맡기노라면 어느덧 산허리를 돌아오는 관광열차와 마주칠 듯 멀어져가는데,오르고 내리는 케이불카도 꿈속의 비단길을 미끄러지는 동화속의 풍경 같은 장면이 되어 이 가을이 무르익은 만산 홍옆의 산하가 가슴 메어지는 감격으로 뿌듯합니다.

일 년을 받아온 태양의 볕 발을 이 가을에 쏟아내어 벌리는 단풍잔치 서래봉 안자락에 때때로 일어나는 산들바람은 불꽃의 춤으로 흔들리며 태양의 열정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내장의 산상에 서서 옛 조선의 선량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떠오르는 감흥에 따라 시 한 수 노래해 보렵니다.

바람도 쉬어가는 글락 정토

봄부터 인내로 모아 사려온 햇살

늦가을 끝자락에 적황 빛 만산에 /내리깔며

끝없이 내려앉은 화려한 저녁노을빛 /갈래들이

나무 나무마다 꽃등으로 밝혔네.

맞바람에 요동치는 만상의 빛깔나래

소슬바람 엇박자에 온갖 무늬 뒤집 /혀 흔들리고

이파리마다 엉켜든 빛 이슬 토양의 /유산들이

이 산등에서 천상의 꽃으로 만발했 /지.

찬 서리 내리는 늦가을 끝자락에

흔들리는 불꽃무늬 산들바람에 나부 /끼며

억 만 마리 꽃나비로 산상에 날아 /올라

바람도 쉬어가는 극락정토를 이루었 /네.

내장산 단풍구경을 왔던 한 범부는 너무나 곱던 아담한 단풍나무 한 구루를 발견하고 그 나무 곁에서 서성거리다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 순간에 그 나무를 몰래 뽑아다가 제집 화단에 심었더니 삼년간은 꽃 같은 단풍을 피웠으나 육년 째 되던 해에는 붉은 물감이 흐릿하게 물들다 멈춰버린 볼품없는 활엽수로 변하여 뽑아내 버렸다는 일화를 듣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혼자서 독점하려는 욕망은 부질없는 망상임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내장산의 토질 비 풍광이 서로 상오작용하고 겨울날의 혹독한 눈보라를 둘러쓰고, 봄날의 변덕스러운 시련을 겪으며 여름철의 따가운 햇살과 소나기를 그렇게 둘러쓰고 나서야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을 피어나게 하는 비법인 것을 우둔한 중생들은 자연에 큰 상처를 입히고 나서야 깨닫나봅니다.

태양의 열정을 닮아 그리도 곱게 물들었지만 유순한 달빛도 닮아 눈부시지도 피로하지도 않은 풍성한 단풍으로 가득한 내장산이야말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커다란 선물입니다.

밤마다 속삭이는 먼 별들의 이야기와 활엽수 이파리에 내린 비바람 서리의 수많은 흔적들이 무궁한 단풍들의 무늬로 착상하여 찬 이슬 맺히는 늦가을 무서리 흩날리는 계절 앞에서 마지막 남은 열정을 쏟아 만 가지 적황색 물감으로 발화하는 단풍의 향연을 산하에 가득 넘치도록 쏟아놓았습니다.

선녀봉 노랗듯 붉은 무늬 얼룩이는 저고리 섶에 아래로 흘러내린 옷고름 갈래는 능선까지 뻗어났고 산하를 덮어 내린 치마폭 갈래갈래는 연초록 무늬까지 어우러져 단풍의 풍치를 바라볼수록 상쾌한 감상에 물들게 합니다.

서래봉 흘러내려 샛노랗듯 발그레한 비단자락 깔아두고 살랑대는 바람결에 나부끼는 한복 의상 곱게 치장한 선녀들이 연이어 다가오는 연상이 끝없이 일어나는 상상에 빠져듭니다.

황금빛 곡식으로 가득한 들판은 수확의 기쁨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지만,

단풍의 향연으로 산상에 넘치는 인파를 불러 모아 불타는 저녁노을처럼 한없이 아름다운 풍치를 선보인 내장산은 산하 가득 넘치는 축복처럼 이 땅의 사람들을 기쁘게 합니다.

고달픈 일상에서 우연히 찾아든 내장산의 산행은 우리 일행에게 한량없는 삶의 기쁨을 맛보게 하였으며 일상에서 쌓여온 갖가지 고민들을 훌훌 털어내는 상쾌한 여정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인파에 떠밀리며 부대낀 편지 않은 등정이었지만 단풍의 절정기를 맞은 내장산의 산행은 참으로 흐뭇한 축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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