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끼리 술 마시면 돈은 누가 내나?
백수끼리 술 마시면 돈은 누가 내나?
  • 김대곤
  • 승인 2010.06.15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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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정도 후배들과 자리를 같이 했다. 술잔이 오가고, 좌석은 무르익어갔다. 나도 농담으로 분위기를 보탰다. 『대한민국 술좌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모범답안은 이랬다. 『최고의 덕목은 원활한 잔 돌림이다. 그러기 위해서 처음부터 반잔씩만 돌려라. 잔 잘 돌아간다. 건강에도 좋고, 화기애애해진다』. 웃음소리 박수소리에 좌석은 정말 화기애애해졌다.

갑자기 한 후배가 소리쳤다. 『일동 기립!』. 나도 일어서야 하느냐고 물었더니,『형님도 일어나셔야』한단다. 남들을 따라 엉거주춤 일어서는데, 아는 후배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그 후배가 다시 소리쳤다.

『법인카드께서 들어오고 계십니다. 박수!』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대단한 기지, 유쾌한 농담이었다.

그런데 곧바로 씁쓰레한 신물 같은 게 뱃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법인카드 소지자가 들어오니 박수 치자고? 재미있는 표현이긴 했지만, 저들 나이에 벌써 저런 우스갯소리를 해?

사오정, 오륙도 소리가 옛날 얘기가 된 이 시대에 50대 초반의 실업은 얘깃거리가 안될 수 있다. 「88만원세대」가 웅변하는 심각한 청년실업과 취업실태를 생각하면, 중늙은이들의 실업문제는 누구도 관심을 쏟지 않는 주제일 수 있다. 당사자와 그 가족만 답답하지, 주요 사회문제로 취급되지도 않는다. 그런 농담은 웃기지도 않는 얘기일 수 있다.

거의 모든 친구들이 건강이 넘치는 몸과 마음을 가졌음에도 이미 은퇴자의 위치에 처해진 게 우리 세대다. 몇 안되는 자영업자를 제외하면, 정년이 타 직종보다 긴 교육계 친구들도 금년이면 대부분 백수가 된다. 「법인카드」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후배들 나이에 법인카드 운운하는 농담을 하지는 않았다. 후배들이 10년 일찍 그런 위치에 서 있게 됐다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3년에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전체인구의 14% 이상이 되는 「고령사회」로 접어든다고 한다. 고령사회는 선진국의 증표이기도 하지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당장 노인 한 사람을 부양하기 위한 근로가능 인구(15~65세)가 줄어들어 그들의 부담이 커진다. 노인부양문제는 복지 차원의 문제일 뿐 아니라 고용문제, 저축률, 경제성장 등 여러 문제와 직접 연결돼 있다.

인구구조의 노령화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해 서구 선진국에 비해 노령화 속도가 빠르다. 농업이 주류산업인 전북의 경우 노령화 추세는 더욱 가파르다.

누구도 나이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생산활동에서 밀려나 있고, 고정 수입이 없어 스스로 위축되고 남의 눈치를 살피기는 하지만, 노인들에게도 빛나는 젊은 시절이 있었다. 젊은이들도 노령화사회가 자신과 무관한 까마득한 미래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령화사회가 초래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충격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어제 졌던 해가 다시 떠오른 오늘, 불러주는 곳도, 갈 곳도 딱히 마땅치 않은 「은퇴가 강요된 노인」들에게는 당장의 시간 때우기도 급하다. 그래서인지 동네에서 만나는 중늙은이들 중에 등산복 차림이 꽤 많다. 시간은 많으니 건강을 위해 언제든지 산으로 냇가로 움직이기 좋은 복장이라 그런가? 정장도, 캐주얼도 어정쩡한, 맞춰 입을 옷이 마땅치 않기 때문은 아닐까? 나도 등산복 차림이 제일 편하다. 산에 안가더라도.

이럴 땐 또 웃어야 한다. 농담이 필요하다. 직장 가진 사람과 백수가 술 마시면, 돈은 누가 내야 하나? 이건 쉬운 문제다. 당연히 직장 가진 사람이 낸다. 그러면 백수끼리 술 마실 땐 누가 계산해야 하나? 대답이 쉽지 않을 것이다. 정답은 『최근 백수!』. 백수도 초기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으니까. 이런 글에는 마지막이 이렇게 끝나야 제격이다.「妄言多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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