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민 익산보훈지청장>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천안함
<이찬민 익산보훈지청장>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천안함
  • 익산=최영규
  • 승인 2010.04.1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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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한민국의 3월은 우리 국민에게 희열과 비극이 교차한 달이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선수들의 메달획득으로 우리국민에게 즐거운 환호를 주는 한편 정확한 원인도 모른 채 의혹 속에 진행 중인 천안함 침몰 사건이 그것이다.

사건 발생 2주가 지난 현재까지 연일 방송을 통한 실종자 소식은 안타까운 마음을 더한다. 설상가상으로 실종자 수색을 위해 바닷속에 들어간 고 한주호 준위의 죽음에 이어 천안함 관련 바다 밑 수색작업을 벌이던 민간 어선이 침몰해 선원9명이 실종되는 비극이 이어졌다.

천안함에 갇힌 아들들을 구하려 자신의 일신을 돌보지 않고 바닷속으로 뛰어든 한준위의 살신성인은 91년전 일제의 탄압 아래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애국선열들의 뜻과 일맥상통한다.

4월 13일 오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지 91주년이 되는 날이다.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헌법 전문을 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라고 명시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3.1 운동이후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지도자들이 더욱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정부수립의 필요성을 깨닫고 국내외 여러 곳에 산재해있던 임시정부를 통합한 것이다.

3.1운동으로 전 세계에 조선이 독립국이고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천명했다면 임시정부는 독립국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수립의 당연한 절차였다. 다만 나라를 잃고 영토 밖에서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임시정부’라고 명명하였지만 이는 우리 역사 최초의 국민주권국가이자 향후 27년간 지속적 독립운동을 펼친 정부로 식민지 역사가 있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본의 대대적 탄압과 중일 전쟁으로 상하이에서 항저우, 전장, 광저우, 충칭에 이르기까지 고난의 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독립에 대한 의지와 열망을 꺾지 않고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국내외 동포를 관할하기 위해 교통국을 설치하고 지방행정제도인 연통제를 실시하여 군자금 모집, 국내 정보수집, 애국성금 모집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또 1차 세계대전 후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하는 등 활발한 외교활동을 하는 한편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국내외 각지에 독립의지와 활동을 알리고 광복군을 창설하여 군사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처럼 한국사와 세계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가지는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세계 어느 민족을 보더라도 나라를 잃은 지 9년 만에 정부를 수립하여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독립운동을 이끌어나간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한민국임시헌장을 보면 ‘남녀노소와 모든 종파가 일치단결하여 정의와 인도가 지배하는 나라를 세우자’라는 말이 있다. 이번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실종자 가족뿐 아니라 국민모두가 침통함과 애통함을 금치 못하는 이때에 국민이 대동단결하여 사건의 정확한 원인규명과 한 치의 의혹 없는 사건해결을 바라며 사망자와 그 유가족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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