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경 전주시 부시장> 이제 전주는 슬로시티(slow city)로 간다
<안세경 전주시 부시장> 이제 전주는 슬로시티(slow city)로 간다
  • 김경섭
  • 승인 2010.04.11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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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식사 시간은 초스피드를 자랑한다. 보통 10분 내외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 끼를 뚝딱 해결하고 개중에는 3분 이내에 해치우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건강을 위해 권장하는 밥 씹기 횟수가 1800회라는데 우리 국민의 평균횟수는 600회 정도에 그친다고 하니 전 국민 모두가 속식(速食)에는 일가견이 있다 할 만 하다.

비단 밥 먹는 일 뿐이겠는가. 흔히 ‘빨리빨리’로 표현되는 속도우선주의는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특성으로 꼽힌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라는 얘기는 진부한 소재가 된 지 오래고, 우리 사회가 전쟁의 폐허 위에서 유례없는 초고속 성장을 이룬 이유도 이 ‘빨리빨리’ 문화에서 기인한 바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속도가 곧 경쟁력인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빨리빨리’ 문화는 더욱 탄력을 받을 듯 하다. 물리적 속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인의 특성 때문인지 국내 인터넷 속도는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IT 분야의 성장세는 놀라울 정도다. 미래 예측 전문가 집단인 ‘세계미래회의(world future society)’의 회장 티머시 맥은, 시간이 앞으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되는 ‘시간부족사회’가 올 것으로 예측했는데 그의 전망이 옳다면, 시간관리와 속도전에 능한 우리 국민들은 미래 사회에서도 충분히 선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빠름’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시간 자체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도 동반돼야 할 때다. 이미 우리는 압축성장으로 인한 경쟁의식, 과도한 스트레스, 무한 이기주의 등 부작용을 혹독히 겪고 있다. 제대로 된 충전 없이 향후에도 이런 식의 과부하가 지속된다면 삶의 질과 국가 경쟁력이 모두 저하되는 등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큰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 티머시 맥 역시 ‘시간부족사회’라는 것은, 결국 여가가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 자원이 될지 반어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을 보면,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빠름을 위한 느림’이 아닐까.

실제로 ‘느림’에 대한 욕구도 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등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삶을 돌아보는 여행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 역시 관광객의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관광 상품으로 연간 관광객 200만 시대를 여는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전주시의 경우, 이러한 사회 흐름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이를 시의 발전 원동력으로 삼기 위한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한옥, 한식, 한지, 한소리 등 느림의 미학이 살아 있는 전주 고유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국 슬로시티(slow city)'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출범한 슬로시티는 느리게 사는 삶을 지향하는 국제적 조직으로 전통문화 보존과 생태주의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지역공동체를 말한다. 현재 슬로시티에는 세계 16개국, 125개 도시가 가입되어 있고 한국에서는 전남 신안군, 담양군, 경남 하동, 충남 예산 등 6개 지역이 한국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다.

전주시는 올해 6월 가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승인이 이뤄질 경우, 도시형 슬로시티로는 국내 최초로 지정받는 것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대부분의 인간생활이 도시에서 이뤄지는 현대사회에서 도시형 공동체인 전주시의 슬로시티 가입은, 슬로시티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현대생활양식에 맞게 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빠름과 느림을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 그래서 전통과 미래가 현명하게 공존할 수 있는 도시가 전주라는 점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주가 ‘가장 한국적인 녹색형 여가도시’로 빠르게 발전하는 성장동력으로도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이 인간에게 속도를 강요할수록 인간은 더욱 휴식을 갈망하는 시대…. 그래서 누구나 속도의 균형을 꿈꾸는 요즘, 전주의 슬로시티 가입과 체계적인 슬로시티 육성은 ‘빨리빨리’ 문화의 새로운 진화를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미덕이 조화를 이루며 인간다움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될 슬로시티! 바로 전주이기에 꿈꾸고 또 실현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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