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 복지의 필요성
먹을거리 복지의 필요성
  • 김흥주
  • 승인 2010.01.12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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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 2005년 1월 제주 서귀포시에서 학생급식용 부실 도시락 파문이 일어났다. 뒤이어 전북 군산시에서는 소위 건빵 도시락 사건이 화제가 되었다. 당시 정부는 파문 10여 일 만에 아동급식운영지침을 마련하며 사태의 진화에 나섰다. 이후 자치단체나 관계 기관 상당수는 식권이나 식품교환권, 음식재료 공급제도를 통해 결식아동을 지원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음식의 품질에 대한 문제제기를 없애고자 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결식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해동하거나 조리할 수 없는 여건에서 냉동식품이나 식재료를 지급받는 결식아동도 있었고, 늘 분식집에서 식사를 해야만 하는 식권을 제공받는 결식아동도 많이 있었다. 무엇보다 먹을거리 안전 문제가 항상 뒷전이었다. GMO 식재료는 예사이고, 값싼 수입농산물이 공급되었다. 이것이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한다는 대한민국에서 보이고 있는 결식아동 지원프로그램의 현실이다.

4년이 지난 2009년 12월 현재.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과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곳곳에서 민생, 복지, 교육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결식아동과 무료급식 학생들에 대한 급식지원 예산이 대폭 깎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2009년 541억이던 결식아동 급식지원금이 2010년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된 것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방학 동안 급식을 지원받던 결식아동 25만 명이 다시 굶게 생겼다. 이것이 세계 9위권의 수출규모를 자랑한다는 대한민국의 먹을거리 복지 현황이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통념 중 하나는 “이제 먹을 것 하나는 풍족하여 누구나 배고픔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분명 이전 보릿고개 시절보다 먹을거리 절대량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풍요 속에서도 매년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실제 굶고 있거나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이다. 실제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급식지원을 받는 결식아동이 2009년 현재 45만 명이며, 교과부로부터 무료급식을 받는 초중고생이 50만 명이 넘는다. 여기에다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 결식노인이나 노숙자까지 포함하면 굶는 인구는 상상 이상으로 많다. 2007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10%가 항상 배고픔을 느낀다. 이들은 대부분 소득수준이 하위 25% 이내에 포진되어 있다. 다이어트 열풍과 웰빙 식단, 안전한 유기농을 안내하는 기사가 넘쳐나는 와중에서 대다수 빈곤층은 굶거나 배고픔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빈곤층이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먹을거리의 안전과 영양수준이 매우 열악하다는 사실이다. 무상급식에서 제공되는 음식은 수입 식재료를 사용하거나 냉동식품이 대부분이다. 빈곤층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은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에 쉽게 의존한다. 독거노인들의 식사는 한국인 영양섭취기준을 충족시킬 수가 없다. 계층별 먹을거리 양극화가 이제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저소득층의 먹을거리 문제는 이들의 영양결핍 문제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한다. 누구나 먹을거리에 접근할 수 있는데도 왜 저소득층의 건강은 상위 계층에 비해 여전히 열악한가?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답이 있다. “저소득층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는데다가 음주와 흡연, 운동 부족 등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을 가져서”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먹을거리 양극화 논의는 그렇게 답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먹을거리 양극화와 이에 따른 건강 불평등 문제를 먹을거리 정의(food justice)의 문제로 접근했다. 값싼 패스트푸드나 정체불명의 정글 푸드를 먹고 비만과 식원성 질병에 시달리는 것은 개인의 선택과 그 결과지만, 개인의 선택은 사회적 영향아래 놓여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먹을거리 복지는 바로 이러한 먹을거리 양극화 문제를 제도적이고 정책적인 접근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먹을거리 절대량의 충족뿐만 아니라 안전과 건강, 영양 등 먹을거리 질적 측면에서 사회적 최저선(national minimum)이 관철될 수 있을 때, 우리사회도 최소한의 선진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선진화를 외치는 정부에 의해 아이들을 위한 급식예산마저도 전액 삭감되는 상황이다. 선진화와 국가 품격 논의가 참으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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