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증은 호랑이에게 줘 버리자
조급증은 호랑이에게 줘 버리자
  • 최규성
  • 승인 2010.01.0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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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을 홀가분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지난 주말 연례 행사를 했다. 모처럼 큰맘 먹고 산에 오른 것이다. 전날 2009년의 희노애락을 다 덮을 듯 함박눈이 내렸고 당일 날씨도 좋아서 그런지 등산 동호회를 비롯해 산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한참을 땀 뻘뻘 흘리며 육중한 몸을 끌고 올라가는데 산이란게 높아질수록 길도 좁아지는 법이라지만 의아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다음 코스로 가기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내밀어 무슨 일인가 살피다 행여 기다림이 길어질까 하는 노파심이 생겨 우선 대열에 합류했다. 가만 보니 수십명으로 이루어진 동호회 회원들이 대열이 깨지는걸 막기 위해 급하게 등산하면서 하산하는 등산객들과 얽히고 설켜 산 위에서 대중교통 기다리듯 길다란 줄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한참 뒤 정체가 풀리면서 다시 등산을 하였지만 모두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꼭 그렇게 급하게 가야했나 하는 생각이 등산 내내 곱씹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는 단지 운동을 위한 것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모처럼 도심을 벗어나 그간 찌든 몸과 마음을 자연 속에서 행궈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일 것이다.

또 산에 한번이라도 오른 사람이라면 온 몸으로 계절의 변화를 목도할 수 있는 등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한발 한발 산을 오르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잠시 쉬기 위해 주위로 시선을 돌리면 어느새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재잘재잘 새들의 노래 소리, 풋풋한 흙내음,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낙엽과 같이 그야말로 자연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카타르시스는 오직 천천히 산을 즐길 때에만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하지만 오직 정상을 밟을 생각에 가득 차 급하게 올랐다 조급히 내려오면 이 모든 것을 느낄 수가 없다. 정상에 올랐다는 피로로 얼룩진 쾌감만 얻을 뿐, 자연이 주는 선물은 물론이고 돌아오는 것은 무릎 통증 밖에 없다. 그리고 정상 정복만을 위해 급하게 오르내리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결국 지나친 무릎 혹사로 걷는 것 자체를 포기해야하는 반신불수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오랜 산행 끝에 자연이 주는 선물을 뜸뿍 안고 천천히 내려오다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과연 지난 한해 우리 사회는 자연의 순리에 맞춰 그 속에서 주어지는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만끽했는지 아니면 지나친 조급증으로 인해 비만 오면 쿡쿡 쑤시는 무릎을 감싸는 신세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한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조급함, 그 자체였다. 연초 갈 곳 없는 세입자들의 저항을 테러로 규정하고 강경진압으로 몰아붙여 6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용산참사를 시작으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토의 젖줄을 어떻게든 임기 내에 시멘트로 발라버리겠다며 1년내내 우리 모두를 괴롭히고 마지막까지 맹위를 떨친 4대강 사업까지. 각종 조급증으로 입원신세까지 진 한해였다.

백호의 해인 경인년이다. 백호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 영물이지만 지도자가 악행을 저지르거나 인륜을 거스르는 일이 많아지면 광포해진단다. 백호가 거칠고 사나워지지 않도록 경인년에는 지도자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어 국민 모두가 자연의 순리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한해가 되길 기원한다. 조급증일랑은 호랑이에게 줘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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