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광릉(光陵)
7. 광릉(光陵)
  • 김은희
  • 승인 2009.12.17 16: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카인 단종(端宗)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아 13년 3개월간 왕위에 있었던 세조(世祖)가 1468년 9월 8일 현재의 창경궁인 수강궁(壽康宮)에서 승하하였다. 신병이 있어 예종(睿宗)에게 왕위를 넘겨준 다음 날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죽은 뒤에 묻힐 자리를 정해 두지는 않았다.

문종(文宗)의 능지 선정, 장남인 의경세자(懿敬世子)와 빈(仁粹大妃, 昭惠王后)의 능지 선정, 작은 며느리이며 훗날 왕위에 오른 예종의 세자시절 빈이었던 장순왕후(章順王后)의 능지 선정에 깊이 관여를 하였던 왕이었기에 의아스럽다. 더욱이 자신이 왕의 임무를 수행중임에도 장남과 둘째 며느리의 무덤 선정 시에는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능지로 결정을 내릴 만큼 풍수논리를 따르는 왕이었기에 자신이 묻힐 터를 정해둘 만도 했지만 그렇지를 않았다.

조선시대 27명의 왕 중에서 풍수를 선호했던 왕으로 세종(世宗)과 세조, 그리고 정조(正祖)를 꼽는데 누구도 주저하지를 않는다. 그러나 세 임금이 풍수를 활용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

세조는 능지 선정 시에 수많은 대신과 상지관(相地官)으로 하여금 현장을 다녀오게 한 뒤 궁궐에서 토론을 벌인 후 현장을 본인이 직접 확인하여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린다. 의경세자가 승하하자 19군데의 후보지를 22명의 대신으로 하여금 상지관을 대동하고 현장을 나누어 다녀오게 하였을 정도다. 그런 과정에서 경회루(慶會樓)에서 대신과 상지관과 함께 벌인 주산(主山)에 대한 논쟁은 매우 흥미롭다.

둘째, 능지 선정 시에 다른 사람의 무덤 자리를 선호한다. 의경세자의 무덤인 경릉(敬陵)은 대제학을 지낸 정이(鄭易)의 무덤 자리였으며, 장순왕후의 무덤자리인 공릉(恭陵)은 조선 초기 동북면도순문사를 지낸 강회백(姜淮伯)의 어머니 무덤 자리였다.

셋째, 자신이 좋아하는 풍수학인과 싫어하는 풍수학인을 뚜렷하게 차별대우를 하였다. 세종대에 세자빈(顯德王后)이 승하하여 경기도 안산에서 능지를 조성하던 중에 전농시(典農寺)의 노비 목효지(睦孝智)가 자리가 좋지 않아 아들이 죽을 흉지(凶地)라는 상소를 올리자 무덤의 방향을 고쳐 장사를 지낸 일이 있었다. 당시에 세종 임금은 목효지의 용기와 마음을 읽어 풍수공부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천인을 면해주고 양인(良人)의 신분을 주어 풍수학에 종사하도록 하였다. 그런 목효지가 문종의 능지 선정에 또다시 흉지라는 상소를 올리자 왕위를 넘보던 세조의 눈 밖에 나게 되었고, 결국은 왕위에 즉위 하자마자 그를 교수형에 처해 버렸다. 그러나 세조가 좋아했던 풍수학인 안효례(安孝禮)는 당상관(堂上官)에까지 오른다.

이와 같은 면이 세조의 사후(死後)인 능지 선정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처음에는 태종(太宗)과 세종의 능지가 있는 서울 내곡동 근처를 살폈으나 이는 외형적인 행동이었고, 결국은 다른 사람의 무덤 자리를 중심으로 능지를 찾아 나선다. 광주(廣州)에 있는 보문각직제학을 지냈으며 후에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된 이지직(李之直), 풍양(豊壤)에 있는 영의정을 지낸 정창손의 아버지 정흠지(鄭欽之), 행호군(行護軍) 유견(兪堅)의 무덤 자리를 중심으로 살폈다.

여러 대신과 상지관 안효례는 정흠지의 무덤자리가 능지로 적합하다고 하였으나 또 다른 상지관 최호원(崔灝元) 만은 쓸 수 없다고 하였다. 임금이 현지로 나가 살펴본 후 전에 고했던 말과 현장에서의 말이 다른 최호원을 의금부에 가두어 버리고 정흠지의 무덤자리를 능지로 정하니 그 곳이 곧 광릉(光陵)이다. 예종은 6일 만에 최호원을 석방시키는데 이 또한 세조의 유교라고 했다.

세조를 같은 해 11월 28일 축시(丑時)에 정남향(子坐午向)으로 장사를 지냈으며, 조선시대 첫 수렴청정을 하였던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성종 14년(1483) 4월 1일 온양(溫陽) 온천에서 요양 중에 승하하자 같은 해 6월 12일 인시(寅時)에 광릉 왼쪽 언덕에 축좌미향(丑坐未向)으로 장사를 지냈다. 이와 같이 같은 국(局)내에 각기 다른 언덕에 능을 조성하는 형식을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