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광장-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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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경
  • 승인 2009.12.0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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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탄생

이훈 / 칼럼니스트

수건이 얼굴의 더러움을 닦아내고 걸레가 온 집안의 더러움을 닦아내고 행주가 밥상과 도마의 더러움을 닦기 위해서도 제 스스로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 이것은 수건이 수건이 되고 걸레가 걸레가 되고 행주가 행주가 되는 길이다. 수건의 이름을 ‘자결건(自潔巾)’이라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자결’이란 스스로 깨끗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수건(巾)이라 하기는 하였으나 여기서 얼굴을 닦아내는 수건뿐만이 아니라라 걸레나 행주 따위도 모두 포괄적인 개념으로 보는게 좋겠다.

수건과 걸레와 행주는 제 자신을 더럽혀서 다른 것을 깨끗하게 하는 물건이다. 얼굴에 얼룩이 묻으면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내고 온 집안에 먼지가 쌓이면 걸레로 깨끗이 닦아내고 밥상과 도마에 음식 찌꺼기가 남아 있으면 행주로 깨끗이 닦아낸다. 만일 다른 것을 닦아내는 것으로 끝이라면 수건도 걸레도 행주도 그것으로 끝이다. 더렵혀진 상태로는 다시 사용할 수 없으니 그런것은 버려져야 마땅하다. 더 이상 수건이 수건이 아니요, 걸레가 걸레가 아니고, 행주는 행주가 아니다.

‘자결’이란 이름은 이와 다르다. 이 이름에는 ‘새로운 탄생’이란 의마가 내포되어 있다. 비록 다른데 묻은 더러움을 닦아 내느라 제 자신이 더렵혀질지라도 제 자신을 다시 깨끗하게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제 자신이 깨끗해졌으니 수건이 수건으로 다시 태어나고 걸레가 걸레로 다시 태어나고 행주는 행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더러운 수건으로는 얼굴을 깨끗이 닦을 수 없다. 더러운 행주로는 밥상과 도마를 깨끗이 닦을 수 없다. 그리고 마음과 행실이 더러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깨끗하고 올바른 삶의 속으로 이끌어 줄 수 없다.

수건이나 걸레나 행주나 더렵혀진 상태로는 제 구실을 못한다. 더러운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면 얼굴이 되레 더러워지고 더러운 걸레로 온 집안을 닦아내면 집안이 되레 더러워지고 더러운 행주로 밥상과 도마를 닦아내면 밥상과 도마가 되레 더러워진다. 그 스스로가 먼저 깨끗하져 있어야 한다. 더럽혀졌다면 빨아서 깨끗해져야 한다.

수건과 걸레와 행주는 물로 빨면 깨끗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물로 아무리 씻어도 마음과 행실까지는 깨끗해 질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수신(修身)’이다. ‘수신’이란 몸을 닦아낸다는 뜻이다. 그 근본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데 있다. 마음은 사람 몸의 주재자인 것이다. 마음이 바르게 되어야 행실도 바르게 닦을 수 있고 마음이 바르지 못한다면 행실도 바르게 될 수 없는 법이다.

자기의 마음과 행실이 바르지 못하니 그런 사람이 어찌 남을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겠는가. 마음과 행실이 바르지 못한 부모는 자식을 바르게 키울 수가 없고 마음과 행실이 바리지 못한 스승은 제자를 바르게 가르칠 수 없고 마음과 행실이 바르지 못한 지도자는 사회와 국가를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은 바르게 하려면 먼저 제 마음부터 바르게 하고 제 몸부터 바르게 닦아야 한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역시 싫어하는 것이니 이것을 남에게 시키면 안된다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己所不欲勿施於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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