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고치는 의사에서 사회 고치는 정치인으로 이끈 DJ를 기억하며
환자 고치는 의사에서 사회 고치는 정치인으로 이끈 DJ를 기억하며
  • 김춘진
  • 승인 2009.08.18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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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도 못한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비통한 마음을 가라앉혀 20년 이상 친분을 나눈 그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몇 자 적고자 한다.

1980년초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8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뒤 미국에 체류하던 김대중 대통령을 진료하던 대학친구가 한국에 돌아가면 내게 진료를 받으라는 소개로 의사와 환자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사와 환자 관계는 차츰 정치적인 조언자까지 발전되었다. 한번은 우루과이 라운드로 농촌 경제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쌀 값 문제보다는 먼저 잘사는 농어촌을 위한 전반적인 농어촌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는 나의 제안에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의 초기 농업정책 역사부터 시작해 현재 농업 강대국들의 농업정책과 한국 농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으로 나를 압도시켰다. 얕은 지식에 기초한 설익은 한국 농업정책을 제안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대안을 제시할 때 얼마나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상임위원회와 관계없이 한국 농어촌문제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공부하여, 원산지 표시 의무 확대, 농가부채 문제해결, 농촌진흥청 폐지 저지, 면세유 연장, 후계농어업인 병역대체복무제도 도입 등을 추진하였으며, 그 결과 농어민단체로부터 우수의정활동 수상과 제18대 총선에서는 농어민단체들의 지지선언이 이어졌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하자 김대중 대통령 내외분은 동교동으로 나를 초대하여 초선인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하기에 앞서 정치인으로 기본자세에 대하여 말씀해주셨다. 첫째, 정책을 위한 정치를 하라. 둘째, 정책 전문성을 위해 상임위원회를 바꾸지 말라. 셋째, 언론을 쫓지 말라. 넷째, 초선이지만 사회적 경륜이 많으니, 여·야의원 모두와 소통하고 화합하는 의원이 되라. 다섯째, 실력을 갖추어라.

지난 6년간 의정활동을 돌이켜보면 당의 결정에 따라 제17대 국회보건복지위원회에서 제18대 국회교육과학기술위원회로 상임위를 바꾼 것을 제외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크게 어긋나게 한 것이 없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가르쳐준 정치인의 기본자세는 나의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까지 지배하여 동료의원이나 정치지망생을 만나면 어느새 나는 그 분의 가르침을 전하는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평화상을 받고 외환위기를 1년만에 극복한 대통령, 햇볕정책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이끈 한국 민주주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 분은 환자를 고치는 의사에서 사회를 고치는 정치인으로 이끌어주신 분이다.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그분과 나는 환자와 의사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였지만 20여년 지난 지금 나는 재선 국회의원으로 사회 질병을 고치는 정치인이 되었다.

2004년 이후 2008년까지 5년 연속 의정활동감시 시민단체가 선정한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되었고, 얼마전에 시민단체가 수여하는 ‘공동선 의정활동 상’도 수상하였다. 시민단체와 언론 등으로부터 우수의정활동 국회의원이라는 과분한 평가를 받을 때마다 그분을 떠올렸다. 앞으로도 좋은 소식이 있을 때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랑하고 싶어도 이젠 더 이상 그 분 앞에서 자랑할 수 없어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러나 그 분은 내 마음속에 살아 계시고 또한 앞으로 나의 의정활동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할 것이며,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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