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바오와 창조도시
빌바오와 창조도시
  • 김윤태
  • 승인 2009.08.17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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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 북부 바스크 지역에 빌바오라는 도시가 있다. 빌바오는 지난 100년간 공업도시로 성장했으나 철강, 조선 등 전통적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급격하게 침체된 도시로 전락했다. 빌바오는 무기력한 지방도시 그 자체였다. 그러나 1990년대 도시재생산업을 통해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면서 문화도시로 다시 탄생했다.


세계적인 문화도시 빌바오


빌바오는 법률가, 문화인, 건축가 등 전문가 15명을 구성된 도시재생협회를 통해 도시를 살리기 위해 공공디자인을 활용한 전략을 과감하게 채택했다. 뉴욕에 있는 세계적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을 끌어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무려 1700억원을 투자하는 미술관 건립은 시작부터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다. 먹고 살기도 힘든 데 무슨 미술관 건물을 짓기 위해 그런 큰 돈을 쓰냐며 냉소적인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 첫 해인 1997년 1600억원의 경제효과를 거뒀다. 지금은 매년 90만 명의 관광객들이 미술관 하나만 보기 위해서 빌바오를 찾는다. 하지만 건물 하나가 도시의 운명을 모두 바꾼 것은 아니다.

빌바오는 다양한 문화시설과 사회기반시설을 활용하여 도시의 모습을 새롭게 바꾸었다. 도심을 관통하는 강줄기를 따라 고급주택을 짓고 새로운 주거단지를 조성했다. 콘서트홀, 고급호텔, 레스토랑이 주변에 생겨나면서 도시는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2004년에 7천억원을 투자해 최신 복합기능을 갖춘 빌바오 전시관도 건립했다. 전시관은 한국의 엑스코의 8배의 면적으로 실내 오토바이 경주대회 등 다양한 행사에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제 공장의 굴뚝연기가 부를 상징하던 시대는 지났다. 새로운 창조도시는 문화적 자산을 지역발전의 잠재력으로 활용하여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삼는다. 이에 2004년 유네스코(UNESCO)는 창조도시 네트워크(CCN)의 7가지 요소로 음악, 영화, 문학, 미디어아트, 요리, 디자인, 민속공예를 꼽으며 창조적인 도시의 요소를 제시했다. 창조도시의 동력은 창조경제이고 핵심산업은 창조산업 또는 문화산업이다. 창조산업은 단지 소득창출을 위한 산업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을 살려 일과 여가를 결합하여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전통문화 유산을 활용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요코하마의 ‘문화예술창조도시’와 상페르부르크의 ‘도시재생 프로그램’이 유명하다.

<크리에이티브 시티 메이킹>으로 저명한 영국 학자 찰스 랜드리는 창의적인 환경과 문화정책을 결합한 창조도시를 강조했다. 창조도시는 건축과 토목이 아니라 도시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잠재력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그래서 그는 ‘도시를 건설한다’고 말하지 않고 ‘도시를 만든다’고 말한다. 도시를 만드는 것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첨단기술로 대형건축물을 짓고 있는 두바이가 우리가 따라가야 할 발전모델이 아니라 빌바오가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창조도시와 전북의 미래


한국에서도 창조도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김해는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디자인과 결합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에 비해 대전에서는 대덕연구단지의 장점을 살려 첨단기술과 미디어아트를 결합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최근 전북에서도 도시재생사업의 시작되었다. 전주는 한옥, 한지 등 전통문화와 음식을 결합한 사업을 벌였고, 군산에서는 개항 당시 지어진 근대 건축물과 산업시설을 활용한 문화단지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전북은 무형문화유산으로 유명하다. 전통음식, 서예, 문학, 국악, 판소리로 널리 알려져 ‘예향’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최근에는 비빔밥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 수 있는 음식으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군산에는 근대문화유산이 172개나 있다. 그러나 전북의 창조사업은 제대로 방향을 정했다고 보기 어렵다.

2004년 도시재생사업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전주에는 창조도시의 상징이 될 건물이 하나도 없다. 창조도시가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도쿄의 롯폰기힐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랜드마크 건축물의 등장이 필요하다. 꼭 비싸고 대형건물이 아니더라도 창조도시의 상징적 건축물을 통해 도시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 뉴욕의 작은 공원들도 랜드마크의 역할을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즐기고, 얼마나 특별한 것으로 인정하느냐의 문제이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700여 채의 한옥을 보전하는 사업을 뛰어넘어 사람들이 찾아와서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 왜 시카고의 빌딩 숲 속에 한 복판에 야외공연장을 만들고 대형 조각물과 미디어아트를 설치한 공원을 만들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새롭게 근대문화도시 사업을 시작한 군산에서도 창조도시의 특성을 살리는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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