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황제 가우스
수학의 황제 가우스
  • 이지현
  • 승인 2009.08.0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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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조화에서 나타난다고 했던가? 작곡가들은 소리를 잘 조화시켜서 음악을 만들고, 미술가들은 형태와 색을 잘 조화시켜서 미술작품을 만들고, 시인들은 단어를 잘 조화시켜서 시를 쓴다. 마찬가지로 수학자들은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잘 조화시켜 수학적인 명제들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음악, 미술, 시가 아름다운 것처럼 수학도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수학은 종종 음악과 비교되곤 한다. 위대한 음악가들은 훌륭한 연주자와 작곡가 또는 두 가지 모두에 능통한 사람으로 분류되듯 수학자들도 수학을 잘 이용하는 응용전문가와 수학이론을 만드는 순수수학자 또는 모두에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인류 지성사에 세 사람의 과학자를 손꼽는다면 아르키메데스와 뉴턴과 더불어 가우스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수학에 황제라고 칭하는 가우스는 18세에 정 17각형을 작도하며 수학 세상에 데뷔한 이래 거의 50년 동안 성숙한 수학자로서 똑같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며 수론, 대수학, 함수론, 미분기하학, 확률론, 천문학, 역학 측지학, 유체정학, 정전기학, 자기학, 광학에 이르기 까지 순수 수학과 응용수학 모두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연구 범위는 너무 광범위하여 19세기 과학의 대표주자가 되었으며, 곡선에 대한 그의 연구를 통하여 일반 상대성이론에 기초하고 있는 20세기 과학의 수학적 기반을 만들었다.

가우스는 그의 아버지 겝하르트 드트리히 가우스와 재혼한 아내인 도로테아 벤제의 외동 아들로 1774년 4월 30일에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도르테아 벤제는 글을 배운 적이 없는 하녀 출신으로 거의 읽지 못했으니K 좋은 지능과 훌륭한 유머감각이 있는 강한 개성을 지닌 여자였다고 한다.

가우스에 대한 많은 일화가 있지만 세살 때 이미 그의 아버지가 일꾼들에게 주급을 지불 할때 아버지의 계산에 틀림을 지적했다는 이야기와 본인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이 말보다 계산법을 먼저 배웠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특히 가우스가 일곱 살 되던 해에 성 캐서린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그의 담임선생님인 뷔트너가 낸 산수문제인‘1부터 100까지의 모든 정수의 합을 구하라’는 문제를 단 몇 초 만에 계산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는 이미 초등학교 일학년에 등차수열의 합을 계산할 중 알았던 것이다. 선생님이 놀라서 가우스에게 설명을 요구하자 1+2+....99+100을 쓰소 그 밑에 100+99+....+2+1을 써 놓고 세로로 각 항을 더하면 101이 되고 항의 수가 100이니 구하는 합은 2배이므로 50x101=5050이다 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매우 상징적인 것이다. 가우스는 일생동안 위와 같이 냉정함을 유지하여 결과들이 맞 는 것에 완전히 자신할 때만 그의 결과들을 발표하였다. 이 사건은 가우스의 일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뷔트너 선생은 가우스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그에게 특별한 책을 주문하여 주었고, 가우스는 뷔트너 선생의 조수였던 열 여덟살 된 바르텔스와 가깝게 되었고, 나중에 수학교수가 된 바르텔스는 뷔트너보다 가우스를 더 잘 이해하고 도와주었다.

뷔트너와 바르텔스는 가우스의 아버지를 방문하여 가우스의 교육에 관하여 이야기 했는데 그의 아버지는 가우스가 보다 좋은 교육받는 것을 내키지 않아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교육비 대기가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두 선생은 가우스를 위하여 특별 후원자를 찾았고, 다행히 페르디난트라는 공작을 만나게 된다. 공작은 1791년부터 천재소년의 계속적인 교육에 필요한 모든 것을 후원해 주기 시작했으며 그의 재치를 통해 수줍음 많은 소년 가우스의 신뢰와 사랑을 얻어낸다. 이렇듯 천재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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