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훈 전북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미래형 인재를 기르는 학교
<박세훈 전북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미래형 인재를 기르는 학교
  • 김은희
  • 승인 2009.06.3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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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학교는 미래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따라서 교사는 항상 미래의 변화에 민감해야 하며, 미래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않된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원래 교육이 전통적 가치와 문화를 전달하는 보수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다, 교사 집단 또한 변화에 앞서가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로는 지식정보화 사회를 앞서가는 미래형 인재를 양성한다고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농경사회, 산업사회, 후기 산업사회의 시대에 했던 관행적 교육을 일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교육은 지식과 기능을 많이 전달하는데 치중하지 그 활용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으며, 시키는 대로 열심히 잘 따라 해야 훌륭한 학생이지, 모든 것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능동적 인간은 어쩐지 불안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정답과 오답을 가리는 평가가 아직도 대세이며, 점수를 잘 받아서 상급학교 진학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데 모든 교육관련 집단의 관심이 다 모여 있다. 무언가 자신만의 특성과 소질을 살려서 소중한 꿈을 키워가는 학생에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개척하도록 도움을 주는 교육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대학을 포함하여 모든 학교들이 공부 잘하는 학생을 선발하는데 관심이 많다. 그 바탕에는 공부 잘 하는 학생은 가르치기 쉽고 교육의 효과도 클 것이라는 소극적 인식이 깔려 있다. 어떤 수준의 학생이든지 받아들인 학생을 한층 더 발전시켜서 자신의 삶에 자신감을 갖도록 만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인식이 모든 학교의 교원들에게 확산될 필요가 있다.

학교를 그 사회의 어떤 조직보다도 귀하게 여기고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학교가 사람을 키워 평생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는 소중한 일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의 목표는 학생을 최고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이 지향하는 목표가 하나라면 최고가 되는 학생은 어느 집단에서나 한명에 불과할 것이다. 한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재가 어느 특정 분야에 몰리지 않고 사회 각계 각층에 고루 분산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교과의 성적으로 학생을 줄 세우고, 한 발작이라도 앞장서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이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학교에 다니는데, 학교에 다니면서 계속 실패를 경험하게 만드는 교육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교가 처음으로 설립되고 학생이 이수해야 할 교육과정이 만들어지면서부터 학교에는 실패자가 생기게 되었다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갈수록 세계는 평평해지고 있다. 능력을 키우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세계에 널려 있다. 문제는 능력이다. 국제문제 전문가로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토마스 프리드만은 학교는 앞으로 나를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인 언터처블(untouchable)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그의 일을 아웃소싱할 수 없는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미래형 인재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은 첫째, 전 세계 사장을 상대로 자신의 재능을 파는 특별한 사람, 둘째는 다양한 지식 노동자들인 전문가 집단, 셋째는 대개 고객을 상대로 하는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확고한 자리를 잡은 사람, 넷째는 끊임없이 노력해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내가 가르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행복하고 성공하는 사람으로 길러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교육자에게 있다. 지금은 학생이지만, 먼 훗날 어떤 사람으로 사회생활을 할지 생각하면서 교육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학교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미래형 인재를 기르는 학교로 거듭나기 위해서 바뀌어져야 할 것이 참 많다. 그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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