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광장-장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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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경
  • 승인 2009.06.2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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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원회장의 노무현 사랑

“‘동지’ 강금원 구속때 극단적 선택 생각한 듯”

위는 어느 중앙일간지(09.5.25)의 기사 제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결정적 이유로 강금원 구속을 든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4월 1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강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토로한 바 있다.

회삿돈 횡령 혐의로 구속 · 수감생활을 하다 보석으로 풀려나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한 강금원회장은 “검찰수사 때문에 돌아가셨다”며 “살인마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강금원회장은 입원과 함께 뇌종양 수술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다음 달 7일 3차 공판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보통 배짱으론 엄두도 못낼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함께 새삼 강금원회장이 화제에 오르고 있다. 일부 언론은 전두환 정권의 장세동과 연관시키고 있지만, 끝까지 지킨 ‘의리’외엔 공통점이 없다. 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를 떠올려보면 비교 자체가 오히려 기분 나쁜 일일 수 있다.

내가 강금원회장을 만난 것은 다섯 번이다. 전주공고 교사로서 ‘전주공고신문’ 편집인을 맡고 있어 전주공고 출신인 그의 동향은 항상 내 관심 안에 있었다. 말할 나위 없이 ‘전주공고신문’ 기사를 위해서였다. 2003년과 2008년 모교 방문 특강, 2004년 장학금 모금 동문골프모임,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 주례의 자녀 혼사, 2008년 교지 인터뷰 등이다.

내가 강금원회장을 만나 직접 들은 바에 의하면 한 마디로 그는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오리지널 고졸 출신으로 성공한 사업가가 그것이다. 은행 돈을 한 푼도 쓰지 않는, 그리하여 빚이 전혀 없는 ‘한국식 사업가’가 아니란 점도 눈길을 끈다. 고향인 전북 부안을 떠나 객지 부산에서 일궈낸 성공이라는 점에서도 대단하다는 평가가 따른다.

그러나 강금원을 강금원답게 하는 것은 역시 끝없는 ‘노무현 사랑’이다. 자신이 70억 원을 출연해 설립한 주식회사 봉화를 통해 “봉하마을 개발사업을 계속하고 싶지만,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밝힌 데서도 알 수 있듯 그의 ‘노무현 사랑’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것보다도 더 강금원을 강금원답게 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에 보인 그의 행보이다. 노 대통령에게 단 한 건의 청탁도 하지 않았음은 물론 오히려 수감생활까지 한 그였다. 노 대통령 퇴임후에도 여느 사람들처럼 거리를 두기는커녕 주식회사 봉화를 설립하여 노상 함께 해오다 다시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전라도 사람 강금원의 경상도 사람 노무현 사랑은 그래서 지역감정 벽 허물기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권력을 만들고 그것에 빌붙어 단맛을 보려는 정치모리배가 아닌 인간관계의 우정이요 의리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결정적 계기가 강금원 구속 때문이라면 더없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강금원회장의 노무현 사랑은 눈물겨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수사에서 그런 점이 또 밝혀졌다. 이른바 ‘노의 남자들’에게 생활비 내지 사업자금 명목의 돈을 빌려주거나 그냥 준 사실이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과 함께 백수가 된 그들이 사고치지 않도록 하기 위헤 그 많은 돈을 썼단다. 나로선 강금원회장의 노무현 사랑을 더 형용할 길이 없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강금원회장의 노무현 사랑에 미치지 못하는 모교 사랑이다. 지금 그가 처한 상황 등 다소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모교 발전이 일정 부분 동문들 몫임은 공공연한 사실이기에 애써 하는 말이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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