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화해의 계기
용서와 화해의 계기
  • 임환
  • 승인 2009.05.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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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로 온국민이 슬픔에 젖어 있다. 노전대통령의 갑작 스런 죽음 이후 국민들이 충격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충격과 비탄 슬픔으로 뒤범벅이다. 국민들 마음속에 서민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뿌리깊게 박혀 있어 서민들의 마음이 더욱 서글픈 모습들이다. 고 노전대통령의 빈소에 찾아드는 조문객들에서 찾아 볼수 있다. 조문객들중에는 애통 비통에 대성통곡을 하는 경우를 종종보게 된다. 노전통령은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많이 편 대통령 중의 한분이었다. 노전대통령은 극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대통령 자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우여 곡절을 겪어온 분이기에 누구보다 서민들의 애환을 잘 아는 분이다. 골고루 잘사는 정책을 추진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중산층 이상으로부터 많은 질책을 받아야 하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역사의 한장면에서 민주인사로, 인권변호사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외롭고 힘든사람들의 대변자 역할도 서슴치 않았다, 한때는 국회의 청문회 스타로 국민 머리속에 깊이 자리하기도 했다. 3당 합당 시절 반대자로 홀로 자리를 지키는 고집스런 정치인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지역 감정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면서도 부산에서 출마하는 대담하고 정면 돌파형으로 국민위에 우뚝 솟아나기 시작했다. 정치 철학이 분명한 인물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민들의 추앙을 받아 대통령에 올라선 노전대통령은 재직 시절 탄핵까지 제기돼 온 국민이 분노와 경악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고, 온 세상을 들썩이게 했다. 파란 만장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지만 남이 하지 못하는 황소같은 뚝심으로 결단에 결단을 내리는 경우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러한 고집스런 국정운영으로 국민들의 의견이 갈라지고 분열되는 현상은 불가피했던 현상이다. 국민통합을 이끌어 내지 못했던 것이다. 전북으로서는 방폐장 유치에서부터 전북의 최대 현안인 새만금 사업 추진에 이르기 까지 많은 논란으로 점철돼 왔다. 어느시절에나 주민들간 의견이 갈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노무현 전대통령 시절에는 많은 일이 펼쳐 지면서 갈등도 많았다. 일의 추진과정에서 반드시 뒤따르는 과정이다. 수뢰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 오던 노전대통령이 마침내 죽음을 선택했다. 이제는 미움도 슬픔도 모두 끝마쳐야 할 때라고 본다. 서로 위로하고 용서로 마무리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본인의 유서에서 남긴대로 노전대통령은 동네 주위에 비석하나만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난다. 노전대통령은 서로의 증오와 질시를 떨치고 용서와 화해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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