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접대와 성의 정치
성접대와 성의 정치
  • 김흥주
  • 승인 2009.04.0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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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성관련 이슈들이 우리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성과 관련된 사회 논의가 평등과 포용의 정치를 이끌어가는 젠더 쟁점 중심으로 이루어질 땐 매우 바람직하다. 아니 오히려 활성화되어야 한다. 양성 평등은 시대적 과제이자 사회적 신뢰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성 담론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하루빨리 접었으면 하는 심정뿐이다. 성상납이나 성접대에서 나타나는, 권력과 쾌락의 장치로서 성을 이용하는 집단들의 야만성이 역겹기 때문이다. 로망의 대상 여배우의 은밀한 세계를 관음증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남성들이 야만적이기 때문이다. 성을 상품화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언론매체들의 졸부 근성이 야비하기 때문이다. 성을 수단으로 하여 권력을 향유하는 성정치가 일상화되어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인간적이고 물신화된 성의 정치가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제까지 성이 권력의 도구로, 이윤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야 하는가? 그렇게 수많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문제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우리 사회 ‘남성’의 문제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으로서 남성 ‘문화’의 문제, 남성으로 ‘살아가기’의 문제다.

한국사회를 흔히 권력과잉의 사회라고 한다. 한국 남성은 이러한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을 생활화한다. 향유할 수 있는 권력은 희소하다. 그래서 권력경쟁에서 많은 남성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권력과 힘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다. 바로 이것이 권력욕 증폭의 순환 구조이다.

남성에게서 성은 그러한 권력을 실현하는 회로이자, 좌절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출구다. 자기실현으로 발휘되는 권력이나 억압으로 체험되는 권력은 상호 인격적인 관계나 정서적인 교류를 배제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왜곡관계에서 권력화된 남성들이 일차적으로 하는 일은 약한 고리에 있는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지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남성은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이다. 그렇게 바라봄으로써 소유한다. 여성은 보여 지는 객체요, 피사체일 뿐이다. 때문에 권력관계에 놓이는 성은 정치적 도구로 밖에 남지 않는다. 청와대 고위 관리에게 성은 이러한 존재였다.

권력에 대한 선망과 공포로 특징 지워지는 한국의 남성문화는 우리 사회 전반의 문화적 빈곤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권력지향적인 사회 속에서 중요한 것은 힘 있는 자를 향해 늘 고감도 안테나를 올리고 그의 심중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줄 서기와 줄 대기에 민첩해야 하고 그 줄이 연약해지지 않도록 모든 가능한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여기에서 인간관계는 자기로부터 소외되어 겉돌 수밖에 없다. 사회관계의 물상화 과정이다. 자기의 속마음을 절대로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서는 안되는 그러한 관계에서 감성은 거세되거나 왜곡된다. 자연히 문화 또한 척박해진다.

여기에서 성은 대개 술과 함께 결합되어 억압된 정서를 해방시키는 매혹적인 출구로 다가온다. 과거에는 이러한 것이 생명력에 대한 원초적 갈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서 남근 숭배의 과정이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말초적 욕망뿐이고, 무력감이 지배하는 가운데 성적인 발휘와 과시는 자기 증명의 한 가지 손쉬운 방식이다.

바로 그러한 욕망과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장치들이 매춘 산업과 문화 상품의 형태로 만연하는 것이다. 성을 레저의 수단으로 오락의 소재로 정형화하는 그러한 행위나 문화들은 많은 경우 그것은 폭력이나 폭력적인 관계를 수반한다. 장자연이라는 여배우의 밤의 세계가 그러한 쾌락으로서의 성문화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제는 성의 정치가 바뀌어져야 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방식이 유효하다. 첫째, 여성이 주변성에서 벗어나 성정치의 주체로 우뚝 서야 한다.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지금처럼 ‘타자화’된 존재로 살아가는 한 장자연의 희생이나 청와대 성접대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둘째, 권력과 쾌락으로 점철된 우리사회 남성다움의 신화를 깨는 일이다. 남성도 한 인간이며, 남성다움의 신화로 인해 가장 고통 받는 존재가 바로 자신임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 여성과 남성의 새로운 자리 찾기를 위해 정부와 사회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성문제는 개인차원이 아니라 사회문화 차원이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생태체계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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