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 짓는 외길인생 40년, 토광 장동국 (사진)
분청 짓는 외길인생 40년, 토광 장동국 (사진)
  • 이지현
  • 승인 2009.03.27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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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나이 15세. 그저 흙 냄새가 좋았고 흙 만지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평생을 흙과 동고동락하며 흙이 세월의 버팀목이 될지는 말이다.

오로지 도예 공으로 성공하겠다는 굳은 일념으로 도공(陶工)의 외길을 걸어온 토광 장동국(55) 선생.

그는 도자기를 빚고 굽는 일 외엔 세상사에 별 관심이 없다. 그냥 흙이 좋아서 도자기 짓는 일을 선택하고부터는 도자기만 생각하면서 불을 지피고 물레를 돌리면서 도자기만 만들었다.

젊은 날에는 열정 하나로 자신을 볶아댔다.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은 도예가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미쳐야 미칠 수 있듯 그 몸부림의 끝에서 그는 자신의 욕심과 마주하게 됐고 그 욕심을 버리고 나니 ‘참된 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흙의 마음에 따라 흙의 길을 열어온 세월이 어느덧 40년에 이르렀다. 이제 초심(初心)으로 돌아갈 때가 왔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그동안의 세월이 공허하게만 느껴져요. 최고의 작품을 빚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보내길 수십 년, 애정을 갖고 작품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했지만 늘 부족하고 아쉽더군요. 세상은 새로운 것을 원하는데 ‘나 혼자만 너무 전통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끊임없이 해봤고요. 하지만, 그 새로움도 전통이라는 뿌리에서 창조된다는 것을 깨닫고나니 도예의 밑바탕이 되는 전통기법에 더욱더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도예를 배우며 익혔던 기본기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완벽함을 추구하는데 온 힘과 열정을 쏟고 싶어요”

토광 장동국 선생의 집은 김제 아리랑문학관 옆 벽골제 창작스튜디오 ‘토광요’. 나고 자라 도예작업을 펼쳐오던 경기도 이천을 떠나 단지 흙냄새만을 쫓아 도예의 불모지인 이곳 전라북도에 자리 잡은 지도 벌써 7년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도자 일이 각광받는 직업이 아닐 뿐더러 장인이 만든 도자기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꾸밈없고 순박한 분청의 멋을 아는 사람이라면 구상과 만들기, 조각, 그림까지 전 과정을 혼자서 다하고 작품 하나하나에 온 정성을 싣는 그의 분청을 일품으로 꼽는다.

전승적 기법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기법’을 가미한 그의 도자기 하나하나는 모두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기 때문.

작품의 문양은 어느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상의 모든 것이 아이디어다. 부대끼며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세상 이야기와 집 앞마당에 핀 이름 모를 꽃, 심지어는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조차 그에겐 새로운 소재거리다. 이렇듯 살아가는 삶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기에 그의 작품 속에는 투박하고 서민적인 감각이 묻어있다.

“평생 흙을 빚었지만 아직도 그 신비함을 모르겠어요. 흙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는 도자기의 특성상 경기도 이천의 것과는 또 다른 멋을 내고 싶어 전북에 둥지를 틀고 이곳에서 나는 흙만을 쓰고 있어요. 실제 김제 흙을 사용해보니 그 색이 맑고 영롱할 뿐 아니라 누구도 똑같이 낼 수 없는 나만의 색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그는 주로 분청사기를 빚는다. 많은 작가들이 분청을 작업하고 있지만 그의 것만큼 질박하면서도 격이 있는 것이 흔치 않다. 분청의 기초는 무엇보다 흙과 유약에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돌가루와 흙, 나무재 등을 섞어 전통 천연유약 제조기법을 개발, 여기에 도공의 혼을 더해 은은하면서도 신비로운 멋을 자아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 도자기는 자신이 흙이 되고 물이 되고 불이 되어 하나의 그릇에 자신의 정수를 다 쏟아 부을 때야 가능해진다.

정갈한 마음과 정갈한 육신의 손이 이루어내는 진정한 도예작업의 결과는 오늘날 대량생산을 통해 이른바 ‘찍어내는 그릇’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정직하다.

유난히 눈빛이 맑고 형형한 빛이 나는 그의 소망은 ‘생이 다 할 때까지 도자기에 열정을 쏟는 것’.

그래서 그는 이 순간에도 도예의 본질을 찾기 위해 애쓴다. 도예 정신의 맥을 지키기 위해 흙과 씨름한 지 40년, 이제 그는 15세 소년이었던 그 때로 돌아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아우르고 버리면서 다시 시작할 참이다. 그리고 처음 맡았던 흙 냄새와 처음 만졌던 흙의 질감을 느끼기 위해 오늘도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진 손으로 흙을 주무른다.

한편 토광 장동국 선생은 다음달 7일부터 13일까지 전주공예품전시관에서 40주년 기념 작품 전시회를 개최한다.

약력 △고려도요입문 △광주요연수 △해강청자 연수 △석촌요연수 △대한민국예술제특선 △제1회 한중미술대전 우수상 △제19회 대한민국종합미술대전 총재상 △제50회 대한민국종합미술대전 초대작가 △제20회 대한민국국제미술대전 최우수상△제22회 대한민국종합미술대전 명장상 △제1회 이천 국제도자기 EXPO특선 △일본호국제견본시도자기전 △토광도예설립 △부산직할시전 △경남대학미술대학생 △한국서문화대전 초청-전시 △한국문화작가협회 초청-전시 △국제미술작가협회 김제시지부장 △21세기미술대협회 분과위원장 △(현) 황실문화재단 김제시지부장 △(현) 토광문화예술촌 운영

이지현기자 jh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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