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워낭소리'에서 건진 보물
영화 `워낭소리'에서 건진 보물
  • 장병수
  • 승인 2009.03.16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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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 고물, 최노인도 고물, 라디오도 고물. 고물이란 흔히 수명을 다했다는 것이고, 버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고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우리는 버릴 수 없는 감명의 끈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 <워낭소리>(이충렬 감독)에서 고물, 즉 40살 된 소와 농부 최노인은 정서적으로 메마른 현대인들의 눈가를 촉촉이 적시며 가슴 속 깊숙이 자리 잡는다.

영화는 경북 봉화군의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노부부의 고단한 삶과 그들이 키우는 40살 된 소의 마지막 3년여 동안의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다. 영화는 2007년 1월 경북 봉화에 있는 어느 사찰에서 불공을 드리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카메라는 갑자기 노인이 들고 있는 '워낭'(집에서 부리는 소의 목에 매어 놓은 종)을 클로즈업 하자 시간은 2005년 4월로 훌쩍 풀래시백한다. 79세 된 최원균이란 고령 농부가 밭에서 일을 하고, 밭 언저리에 소가 매어있다. 평생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사는 최노인과 그의 40살 된 소는 영화의 영문 제목인 Old Partner(오랜 동반자)라는 단어가 암시 하듯이 진정한 파트너이자,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다. 그는 매일 논둑과 밭에서 신선하고 안전한 풀을 베어다 먹이로 사용할 정도로 소에게 지극정성을 쏟는다. 그러던 어느 날 수의사는 소를 진찰한 후 1년을 넘기기 어렵겠다고 최노인에게 전한다. 낙담한 최노인은 우시장에 가서 대를 이을 일소를 구입해 정성들여 사육한다.

어느 날 최씨 부부가 함께 달구지를 타고 귀가하던 중 힘겨워하는 소를 보고, 최노인 부인이 소 달구지에서 내려 밀어 주어야만 하는 웃지 못 할 장면이 연출된다. 분명 현재의 우리 농촌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함에 가슴이 미어진다. 고령화된 농부, 후계 인력이 없는 농업, 개방 압박에 속수무책인 현실, 문화복지 및 의료 혜택의 사각지로 내몰린 농촌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최노인의 깊은 신음소리와 아무 것도 모르고 시골로 시집와 평생을 함께한 그의 부인의 원망 섞인 목소리에서 잘 녹아난다. '40년 농사'라는 우직하고 정직한 경력도 우시장에서는 바로 고물 취급당한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팔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귀가길. 카메라는 40년이란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힘들게 한 걸음씩 내딪는 소 옆에서 똑같은 동작으로 절룩거리며 걷고 있는 노인의 발걸음을 절묘하게 잡아낸다. 이 장면은 비록 그들의 삶이 고단할지라도 베스트 프렌드로서 농촌으로 돌아가 농업 현장에서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신뢰의 발걸음이다.

영화는 어느덧 2006년 12월. 소가 외양간에서 쓰러져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자, 최노인은 코뚜레를 빼어주고, 목에 달린 워낭을 풀어 준다. 이제 최노인의 소는 평생 소임을 다 하고 자유의 몸이 된다. 그 소는 고단했던 삶을 뒤로 한 채 최씨 부부를 남기고 땅에 묻히게 된다. 최노인이 소의 무덤에 막걸리를 뿌리며 아쉬움을 달랜다. 이윽고 찾아 온 봄, 최노인이 큰 정자나무 아래에 앉아 널다란 밭을 물그러미 바라보며 영화는 끝이 난다.

고물들의 집합장처럼 보인 영화 <워낭소리>에도 농업분야에 시사하는 몇 가지 보물이 담겨져 있다. 첫째 보물은 후계인력의 필요성과 중요성이다. 둘째 보물은 환경농업의 중요성이다. 셋째 보물은 여성농업인의 역할과 중요성이다. 최노인은 젊은 소를 구입해서 차세대를 육성하고, 논밭에 농약을 치지 않는 환경 농업을 하며, 현재 농업에서 차지하는 여성농업인의 비중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 보물은 농업·농촌의 건강한 가치다. "마른 논에 물대는 것과 자식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는 것이야 말로 최대의 행복"이라는 최노인 부인의 말에서 농업·농촌을 통한 소중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

영화가 끝나면서 보여준 텅 빈 넓은 밭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최노인의 모습에서 개방화에 노출된 우리 농업, 후계 인력이 부족한 현실에 대한 답답함을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워낭소리>의 고물 최노인과 그의 최고의 동반자인 40살 된 소는 이제 더 이상 고물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서 그리움과 향수로 피어나 부모님과 고향이란 보석으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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