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자의 두 얼굴
재정적자의 두 얼굴
  • 김진
  • 승인 2009.02.10 14: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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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하면 우리는 3.1운동이 떠오른다. 우리와는 원인과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같은 시기의 독일 국민들 역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1차 대전의 패전으로 연합국에게 1.320억 마르크의 전쟁배상금을 물기로 한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인해 1919년부터 채 4년이 안된 기간에 물가가 4.800배나 폭등했기 때문이다. 1919년 당시에는 2마르크가 1달러였기 때문에 굉장히 안정된 화폐였지만, 불과 1년만인 1920년 중반에는 감자 1포대의 가격이 1억 마르크였다니 짐작할 만하다. 심지어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비관하여 맥주만 마셔 댄 사람은 뒤뜰에 쌓인 맥주병으로 인해 먹고 살만해지고, 그 상황에서도 돈을 모았던 사람은 돈보다 땔감의 값이 비싸서 마르크 화폐를 불쏘시개로 써야했다는 얘기까지 전해진다.



* 기상학자와 경제학자

이처럼 어처구니없을 만큼은 아니겠지만, 앞으로 우리의 경제상황 역시 우려보다 훨씬 심각할 것 같다. 경기하강 속도가 외환위기 때보다도 빠르고, 제조업평균가동률도 사상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설비투자와 소매판매도 모두 급락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글로벌 동반 침체로 인해 경기회복의 계기를 찾을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경제학을 공부할 때 들었던 기상학자와 경제학자의 차이점에 대한 얘기가 생각났다. 기상학자는 현재의 날씨만큼은 100% 맞출 수 있지만, 경제학자는 현재의 경제현실마저도 정확히 맞추기 어렵다는 우스갯소리 말이다. 사실 필자도 올해의 우리나라 경제성장 전망치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한 달에도 몇 번씩 관련 수치가 떨어지고, 한은과 국책연구기관의 전망치가 2배 가까이 차이나고, 국내연구소와 해외투자은행들의 예상차가 너무 크다보니 누구도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이 계속된다면 어떤 경제학자도 기상학자를 따라잡기가 어려울 것 같다.



* 재정적자에 대한 이해

이 같은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다 보니, 올해의 재정적자만도 25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사실 요즘 이 같은 엄청난 재정적자에 대해 걱정하는 국민들이 많다. 지금 돈을 마구 찍어내서 쓰면 훗날 누가 갚느냐는 걱정일 것이다. 올해 정부예산이 교육이나 사회복지 등 소득재분배 효과기 큰 분야를 외면하고, 공사판 예산으로 불리는 SOC분야에 21조원이나 증액된 점은 아쉽다. 하지만 지금 정부의 재정확대정책에 대해 크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지나치게 낙관하는 정부의 시각이 문제이긴 하지만,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아직은 나쁘지 않고 누적적자에 대한 압박이 적기 때문이다. 또 재정적자에 대한 석학들의 연구를 살펴봐도 그렇다. 미국경제학회장을 역임한 로버트 아이스너는 <경제현상의 두 얼굴>이란 저서를 통해 국가의 재정적자가 꼭 해를 끼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또 LA타임즈의 칼럼리스트로 잘 알려진 와세다 대학의 리차드 쿠 교수 역시 <재정적자의 두 가지 경우>라는 저서를 통해서 재정적자가 일본경제를 구했다고 평가하고, 국채발행으로 인해 세대 간의 소득이전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 즉 지금 세대가 돈을 많이 써서 재정적자를 내는 것이 다음세대에게 미안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후대에게 빚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이 투자된 자산가치도 함께 물려준다는 점과, 또 하나는 비록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우리 경제가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강한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재정적자 폭이 아무리 커지고 설사 후대에 부담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감내해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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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020 2009-02-24 11:01:00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