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개발사업은 주민과의 대화에서 이뤄진다
주택개발사업은 주민과의 대화에서 이뤄진다
  • 백승기
  • 승인 2009.01.05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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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개발예정지역의 한 사우나에서 있었던 일이다. 필자는 직업상 사업대상 부지를 돌아 보고난 후에는 의도적으로 지역의 사우나를 찾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탕에 있다 보면 서로 격 없이 세상사는 이야기들을 하기가 쉬워지고, 오래 머물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동네 돌아가는 상황을 접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간 오랜 실무 경험을 통해서 체득한 동네 목욕탕방문은 개발사업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최상의 장소중의 한 곳임에 분명하다.

무작정 들어간 낯선 동네 사우나! 서로 모르는 타인들로 가득차서 그런지 첫 느낌은 왠지 그저 그런 어색한 분위기였다.

한참을 탕 안에서 머물다 앞쪽에 있는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분에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이 동네가 조만간 개발이 될 예정이라 하는데 아시는지요?” 반사적으로 돌아오는 대답은 짧고 간결한 목소리로 “몰라요!”라고 하였다. 낯선 이방인의 질문에 별로 관심의 없는 듯 보였다.

낯 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탕 안에 여러분들이 있어서 다행히도 다음 질문 대상자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60대 가량 보이는 두 분에게 좀 전과 같은 질문을 다시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당신 뭐하는 사람여?” 라고 신분을 확인하고 싶은 듯 불쾌한 목소리로 그 중 한분이 질문을 되받았다. 마치 외부침입자로부터 영역을 침해 받는 듯한 위험을 느낀 공동체의 방어 본능처럼.......

신분을 밝히고 조목조목 10여분을 이야기하고 난후 탕 안의 온기가 전해지는 듯 우린 서로의 긴장이 풀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꽃이 핀 후 주변에 계시던 두어 분이 더 모이셨다.

그러던 중 어느 한분이 과거에 서울의 관악구 봉천동에서 살았었다 하면서 “개발되면 서민들 다 쫓겨난다.” 라며 경험담을 장황하게 설명해 주었고, 주변 분들은 서서히 그분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뭐하는 사람여” 라고 질문을 했던 분이 갑자기 “누구 맘대로 개발 한다고 난리여! 말도 안 되는 소리지.”라고 하였고, 그 뒤 몇 마디의 욕을 더 섞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나름대로 논리를 가다듬는 그분들의 대화가 구구절절 간절하고 옳은 내용이 많아서 그냥 듣기만 하였다. 아니 반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굳어지기도 하였다. 과거와 달리 현장의 목소리가 많이 변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뉴타운 및 재개발이 제동이 걸리기 시작할 것으로 예측되어진다. 지난 연말의 각종 보도 자료에 의하면 뉴타운·재개발 지역 내의 세입자들은 “주거이전 비, 임대주택, 영업 손실 보상금” 등의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길거리로 내몰렸을 뿐 아니라 원주민들도 높은 분양가를 감당할 수 없어 주거권을 박탈당하는 등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 하였다고 한다.

시작단계에서 사업추진위와 주민들 간의 개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돌출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최 측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무리하게 사업이 진행될 때 나타나는 불가피한 사회적 현상이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전국 40개 지역의 단체가 참여하는 뉴타운재개발지구 비대위 대표연합 단체를 결성하게 되었고, 정부주도의 “뉴타운, 재개발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주민들을 위한 정책으로 바꿀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행정심판, 헌법소원 등 법적행동도 준비하고 있어 정부와 지자체의 ‘ 묻지마식 뉴타운·재개발 정책’은 어떤 식으로든 주민들의 요구를 피할 수 없을 것 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개발시대! 무한 경쟁개발의 상징이었던 거대한 포크레인, 건장한 철거반 청년들에 의해 길거리로 내몰렸던 세입자들의 간절한 목소리와 절규는 지난 12월 31일 밤 12시 종로 보신각에서 연출됐던 판타지 쇼의 그늘에 가려진 수많은 시민의 촛불과 함성처럼 어두운 장막에 가려져서 시야에서 그 동안 보이지 않았었다. 데이비드 스콜필드가 마술로 한순간에 자유의 여신상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했던 것처럼 이 순간도 서민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택개발 사업은 지역주민과 진솔하게 서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 때만이 사업의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 개발 주체는 처음 시작하는 계획단계에서부터 현장에 천막을 치는 마음을 가지고 주민과 대화하고 공청회도 하고 많은 토의를 하면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사회적 동의 없이 합의체를 형성하는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 주민이 주도하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회가 지원하고 함께하는 미래를 재설계하여 그 동안 말없이 조용하기만 했던 서민들에게 촛불 대신 희망이라는 새해 선물을 주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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