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교과부 업무보고, 정녕 지방교육을 포기하려는가?
2009 교과부 업무보고, 정녕 지방교육을 포기하려는가?
  • 노병섭
  • 승인 2008.12.3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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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2009년 주요업무계획>보고가 진행되었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교육부문 일자리 5만개 창출, △‘자율형사립고’ 30개교를 신규로 지정하는 등 고교다양화 프로젝트 현장으로 확산, △소규모학교(학생수 60명 이하) 106교 통폐합, △ 시?도교육청 지방공무원 정원을 5% 일괄 감축,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추가로 5% 자율감축 유도, △교원양성체제 개편?교원평가?시도교육청 인원 의무 감축?부실 사립대 퇴출 등 교육기관 구조조정 등이 주요 골자다.

우선 보통의 사람에게는 이날의 업무보고가 교과부의 것인지 경제부처의 것인지 헷갈린다. 모두가 경제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을 앞 다투어 내고 있는 마당에 교과부의 경제부처 따라 하기가 뭐 대수로운 일이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기관을 구조조정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게 무슨 경제난국 극복이고 청년실업 해소인지는 의문이다.

교과부가 제시한 5만개의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이다. 교육행정 인턴십과 교육보조원 7500명, 종일제 유치원 보조인력 4000명, 영어회화 전문강사 5000명, 방과후 학교 신규강사 18000명, 대학 연구보조인력 3600명, 대학재정지원사업 연계형 산업체 인턴 2000명 등이다. 보조, 강사, 인턴 등을 일자리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경제난국 극복에 교과부가 동참하겠다는 의지도, 등록금 수준과 비례하여 함께 올라가는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교과부가 발 벗고 나서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소규모 학교 통폐합, 시도교육청 지방공무원 5% 의무 감축, 부실영세사학 퇴출 등의 구조조정을 병행하겠다고 한다. 구조조정으로 정규직 일자리는 줄이면서 비정규직만 잔뜩 늘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렇듯 교육 분야에서 만드는 일자리가 고작 비정규직, 임시직, 용역직, 그리고 공사 인력이라면, 교과부는 차라리 ‘교육’에만 전념하는 게 낫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교과부의 경제효율성 추구가 지방교육 기관 등 사회적 약자를 주로 희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교과부 계획에 따르면 통폐합의 대상으로 지목된 60명 이하의 학교가 수십 개에 달하는 전라북도도 경제 살리기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교육환경에 처해 있는데, 소규모학교는 폐교되고 그나마 근근이 학교를 지탱하고 있는 정규인력조차 비정규직으로 대체한다면 도대체 지방교육은 무슨 수로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업무보고의 내용 중 지방교육을 고사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압권은 자율형 사립고 확대이다. 자율형 사립고의 주요 골자는 △학생 납입금 총액의 3-5% 이상 되는 법인 전입금, △학생 납입금 시도 자율, △재정결함보조금 0원, △교육과정 편성 운영의 자율화, △시도단위 학생 자율선발, △사회적 배려 대상자 20% 의무 선발, △지필고사 이외의 입학전형 등이다.

내년 2월까지 관련 시행령 및 시도 교육규칙을 정비하고, 2010년 30개교 개교를 필두로 2012년까지 총 100개교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립학교는 지방에는 거의 없으니 자율형사립고는 대도시만을 위한 정책이 되고 말 것이다.

여기다 대학자율화 정책의 일환인 대학입시 자율화까지 더해지게 되면 대학은 앞 다투어 고교등급제를 실시하게 될 게 뻔하다. 자율형사립고는 대학들에 의해 최상의 등급을 얻게 될 것이고 지방 소재 고교는 보통이하의 급간에 위치할 것이다. 소위 명문대 입시는 자율형사립고와 특목고만의 잔치가 될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가난한 지방의 부모들이 한 해 교육비가 수천만원에 달하는 자율형 사립고에 자신의 자녀를 들여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지방에서도 부유층에 해당하는 부모들이야 어린 자녀를 대도시로 유학 보낼 것이고, 그러면 지방은 그야말로 마이너리거들만이 남아서 고개숙인 학교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공교육의 발전 운운하며 ‘놀토’에 수십 명의 간부급 국가공무원이 모여 대통령의 말씀을 듣고 내년도 업무계획을 보고하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았지만, 그리 교육적이지도 적절하지도 못했다. 더 이상 구조조정과 희생의 대상을 지금도 소외 받고 있는 지방에서 찾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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