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이슬처럼 받아내는 술이라고해서 소주 (燒酒)라고도 불리웠고 불을 때서 만든다고 해서 화주(火酒), 투명하고 무색해서 백주(白酒)로도 불리운 증류주였다.알코올도수만해도 35도-40도로써 매우 높았을뿐아니라 고급주로 대접받았다 워낙 곡식이 많이 소요되고 술이 독해 조선조 성종때에는 민가에서는 절대 소주를 마시지 못하도록 금령을 내려야 한다고 신하들의 상소가 잇달기도 했다 이런 귀한 술의 역사를 가진 소주가 대중호의 계기를 맞게된것은 일제시대에 들어서다 세수증대를 위한 조치로 시설을 기계화하여 소주를 대량 생산하게 된것이다 즉 일제가 통치도구등으로 활용하기위한 술수에서 비롯된 아픔의 역사였다. 아무튼 그러한 역사를 지닌 소주가 1966년대 낮은 임금의 노동자들한테 인기를 끌면서 "서민의 술"로써 굳게 자리하게 된것이다.
▼소주는 값이싸고 빨리 취할수 있어서 노동자들의 애환을 달래기에는 혹은 친구였다. 특히 보관하기도 편리해 60년대-70년대 진짜서민술이었던 막걸리를 제치고 소비량1위를 차지했으며 80년대-90년대 맥주와 애주가들의 인기에서 지지 않았다. 이처럼 생활고에 지친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아픔을 같이 해주는 소주가 지금은 알코올도수는 내려가고 값은 올라가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어느 식당엘 가더라도 맥주와 소주값은 다르지 않다. 소주의 도수는 29도대를 밑돌고 있다. 그래서 애주가들은 서민의 술에서 소주를 제외해야한다고 농담하기도 하나 아직도 소주의 이미지에 담긴 서민애환과 저항의 상징은지워지지 않을 거시다. 더욱 불황때문에 지친 서민들 마음을 그나마 소주가 달래주고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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