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전통주, 그 역사에 대하여
⑧ ­전통주, 그 역사에 대하여
  • 김효정
  • 승인 2008.10.08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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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즐기고 사랑받는 음식 중 하나이다. 특히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춤과 노래와 술을 즐겨왔으며, 지금도 술은 가장 많은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우리민족과 떼어놓을 수 없이 친근한, 술... 과연 언제부터 술을 마셨을까?

이러한 의문에 정확한 답을 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 민족이 마셨던 술의 종류나 술을 만드는 방법 등이 기록에 자세히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 삼한시대부터 ‘영고(迎鼓)’, ‘동맹(東盟)’등 추수가 끝날 때마다 제천행사가 있었으며, 이때는 밤낮으로 먹고 마시며 즐겼다[晝夜飮酒歌舞]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우리 민족은 농사를 시작하였을 무렵부터 술을 빚어 마셨고 국가나 공동체의 모든 의례에서 술이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왕운기’에는 해모수와 유화의 이야기에서 음주의 기록이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서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술이 음용되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고사기(古事記)> ‘응신조(應神條)’에 ‘백제사람 인번(仁番: 수수보리)이 누룩을 이용한 술 빚기 기술을 전해와 천황이 술을 마시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으며, 인번을 주신(酒神)으로 모셨다’는 기록을 통해 술 빚는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음을 알 수 있고, 아울러 우리나라(백제)의 양조 기술이 일본에 처음으로 전해졌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기록과 같이 일본에 양조기술을 전파한 백제의 인번[수수보리]은 현재까지 일본에서 주신(酒神)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렇게 발달한 술은 고려시대가 되면서 주종이 다양해지고, 특히 증류법이 등장하여 음주문화의 변화 및 다양한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소주는 원(元)으로부터 도입된 것으로, 소줏고리라는 증류기를 이용하여 만들어지는 증류주로 현재 즐겨 마시는 소주와는 만들어지는 원리도 다르거니와 원료 자체가 달라 맛과 향, 혹은 질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고려사회에서 드러난 술의 종류는 조선 말기까지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소주문화는 상류사회로 흡수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집집마다 술을 빚는 ‘가양주(家釀酒)’가 발달하게 된다. 이는 유교가 국교화 되면서 각 집안마다 제사를 지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술 빚는 방법이 점차 고급화되었으며, 상류 사회를 중심으로 발달함에 따라 지방색을 띤 다양한 고급 양조주류가 등장하였다. 또한 지방ㆍ집안마다 가전비법(家傳秘法)으로 빚어져 1,000여 종의 명주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전통주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특히 증류주는 국제화 단계로 발달하여 중국 및 대마도를 통해 일본에 수출이 빈번해 졌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더욱 발달한 전통술들이 멋과 맛을 내면서 ‘명가명주’라는 말을 만들면서 번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로 들어서면서 등장한 주세법으로 그 맥이 대부분 끊기게 된다. 간접세 확보 및 전통문화 근절의 목적으로 시행된 ‘주세법’으로 조선시대의 다양한 주품들은 역사속에서 사라졌고, 이후 획일적인 맛과 향을 가진 술들이 소비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술’의 역사가 민족의 역사로 이어져 함께 굴곡과 아픔을 겪고, 현재 우리의 전통주는 침몰기를 지나 바야흐로 부활기를 맞으려하고 있다. 단순한 술의 역사라고 하기에는 술 이란 것이 우리 민족의 생활과 문화에 많이 젖어있다. 전통주의 부활이 대한민국의, 혹은 한국인 개개인의 부활로 이어지길 바라는 작은 바람도 가져본다.

글 : 전주전통술박물관 나하나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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