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과 쌀 수입
필리핀과 쌀 수입
  • 정재근
  • 승인 2008.08.2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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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리핀 하면 열대지역으로 알고 있고 농업 국가이며 사시사철 어느 때고 벼를 심으면 생육이 가능하고 수확할 수 있어 쌀 생산에 전혀 문제가 없는 국가로 생각한다. 또한 필리핀하면 세계적인 벼 연구의 메카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국제미작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 IRRI)가 있고, 거기에서 지난 70년대 초 우리나라의 녹색혁명을 달성하게 했던 ‘통일벼’를 개발하게 된 근원이 되었던 국가로도 기억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약 3배 이상이 많은 벼 재배면적에 일년에 2기작 이상을 할 수 있는 여건에다 세계적인 연구소까지 있는 필리핀이 왜 세계최대 쌀 수입국가로 전락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필리핀 벼 생산관련 연대별 주요일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 50년대 초 수량성은 단보당 120Kg으로 비록 낮았으나 인구가 적고 재배면적이 충분하여 쌀 자급자족이 가능했으나, 60년대 초까지 벼 생산성보다 인구증가가 가속화되어 1965년에는 국내생산의 21%에 달하는 56만톤의 쌀을 수입하게 되었다. 그 이후 20년 동안 기적의 볍씨라 불리는 IR8을 개발함으로 인하여 생산량의 2배 이상을 생산하게 되어 녹색혁명을 달성하였고, 80년대 초에 약 3년간은 쌀 수출국으로 전환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정치적 혼란 및 농업 R &D의 투자소홀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90년대 후반부터 점차 쌀 수입을 늘려가게 되어 역사상 최악의 쌀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필리핀이 쌀 수입하게 된 주요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지난 10년간 벼 재배면적 및 생산량은 증가하였으나 지속적인 인구증가에 따른 쌀 수급부족이라 할 수 있다. 벼 재배면적이 지난 10년 전에 384만 정보에서 현재 약420만 정보로 늘었으며, 생산량 역시 1,127만톤에서 1,533만톤으로 증가하였으나, 평균인구증가율이 연 2.3% 정도로 현재 약 9,000만명에 이르고 있어 식량생산 증가율이 인구증가율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둘째 다른 개발도상국과는 달리 쌀 소비량이 증가하여 지난 10년 전에 연간 개인당 소비량이 97kg에서 현재 120kg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필리핀은 섬나라로 관개수 확보차원의 지정학적 불리함이 있다는 것이다. 쌀 주요 수출국들인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이 메콩강 유역의 수자원이 풍부한 반면 필리핀의 경우 관개수의 절대부족으로 지역에 따라 건기에 벼 재배가 불가능하고 수량차도 심하다는 것이다. 넷째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에 관개수 확보를 위한 관개수로, 저수지 및 다목적 댐 등 기본인프라 구축이 미흡한 실정이다. 이외에도 유통관련 문제점 및 농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저투입 등 쌀 생산에 저해되는 다양한 요인들이 오늘날 쌀 위기를 초래하게 되는 원인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필리핀 정부는 식당에서 잔밥 처리로 인한 쌀 소비방지를 위해 간편 식품업체에 쌀 절약차원의 밥 반공기 줄임 공급을 적극적으로 권유함과 동시에 중간상인들의 쌀 사재기 금지요청과 더불어 2010년까지 쌀 자급자족을 목표로 국내 R&D투자를 2배 이상으로 늘려 증산을 위한 연구개발 정책, 초다수성 품종 육성과 벼 일대잡종 품종연구 및 다수확 재배법 개발 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이와 관련하여 필리핀 소재 국제미작연구소와 연계한 쌀 증산 프로젝트를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최근의 필리핀 등 국제적 상황으로 볼 때 아시아인들의 주곡인 쌀은 추후 국익을 위해 어느 때든 수출제한 조치를 통하여 식량을 무기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필리핀의 경우 80년대 초 쌀 수출국이라는 자부심으로 쌀 생산 관련 연구 및 인프라 구축에 대한 투자소홀이 현재 최대 쌀 수입국으로 전락한 예를 볼 때, 우리의 주곡인 쌀에 대한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쌀 생산 및 수급은 크게 염려할 상황이 아닌 것은 그간에 정부의 쌀 생산 정책, 농업 인프라구축, 연구, 지도 및 농업인의 기술향상 등이 크게 기여하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빈번한 기상재해와 산업화로 인한 농지면적의 감소 등 생산저해요인들이 커지고 있는 상황 하에서 쌀의 안정적 공급을 안심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농촌진흥청에서 기후변화에 대비한 내재해 고품질 다수성 품종 및 재배기술을 개발함은 물론 초 다수성, 가공용 품종 및 맞춤형 식품을 적극 개발하여 수출전략을 구상함은 물론 유사시 다수성 품종 보급을 통한 주곡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정책 및 기술적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고, 관련 유관기관과, 농업인 단체 및 농업인들이 혼연일체가 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쌀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농촌진흥청 호남농업연구소 농학박사 이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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