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하지 않으면 통한다
통하지 않으면 통한다
  • 김창희
  • 승인 2008.07.3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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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전 아침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어느 전문강사가 한의학에 나오는 말이라 하면서 “통하지 않으면 통한다”라는 말을 하였다. 나도 막 특강을 하러 가려든 참이라 “그래! 오늘의 키포인트는 바로 이거야”라 하면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였다.

“통(通)하지 않으면 통(痛)한다”는 말은 서로 통하지 않으면 고통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인체 내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남녀관계나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더 나아가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그런 것 같다. 최근의 남북관계를 보면서 더욱 이 말이 실감이 난다. 분명히 남과 북은 하나의 민족이다. 그러므로 남과 북은 상통해야 하고, 이렇게 해야 언젠가는 통일(統一)이 될 수도 있다. 요즈음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북한이 미국과는 통하면서 남한과는 닫는다는 말이다. 최근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는 등 그렇지 않아도 경색국면에 있던 남북관계가 더욱 냉각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이후 침묵 하던 북한이 새 정부가 3월 3일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북한 인권사항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한 것을 계기로 반발하기 시작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3월26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남북정상이 새로 합의한 합의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3월 27일부터 28일 사이에는 ‘개성공단의 경협공무원 철수’ ‘북방한계선(NLL) 경고’ 등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동과 발언을 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일련의 행동은 한반도 상황이 그들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응이고,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기도 하였다. 4월 1일 로동신문에서는 “남조선당국이 반북대결로 얻을 것은 파멸뿐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비핵, 개방 3000’ 등의 대북정책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한 우리의 정부의 대응책은 무엇이었는가?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큰 틀에서 보겠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북한에 ‘서울-평양 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안하였고, 현충일 추념사에서는 “남과 북이 진정으로 화해·협력하고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힘쓸 때”라며, “교류·협력사업에서 남북사이에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를 포함한 국내의 많은 전문가들은 당국간 대화를 위해서는 ‘6.15공동선언’이나 ‘10.4정상선언’을 인정하는 것이 그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 낼 수 있는 길이라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7월 11일 국회연설을 통해 “남북당국의 전면적인 대화가 재개되어야 한다”면서, “과거 남북간에 합의한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북쪽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 이미 금강산에서 사건이 발생한 때였다. 우리정부는 이 사건에 대하여 남북공동조사단을 구성해서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는 묵묵부답이다.

이것은 국제문제로 이어졌다. 지난 7월 22일에서 24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3,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의 의장국 성명에 우리 측에서 제시했던 “금강산 피격사건 조속해결기대”와 북한 측이 제시한 “10.4남북정상선언 기반 남북대화 강력지지”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우리 측이 의장국인 싱가포르에 ‘10.4’문제는 빼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자 두 사항을 모두 삭제하였다. 이 문제를 놓고 언론에서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이 ‘한국외교 완패’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결국 남북한이 통하지 않으니 금강산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국제무대에서 치부를 들어내는 문제도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재와 같이 남과 북이 대립상태에 있으면 서로 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지 고통이 따를 뿐이다. 북측도 진상조사에 임해야하고, 우리 측도 지난 정부에 대한 부정에 연연 해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실용(實用)이나 북측이 주장하는 실리(實利)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에서 효과가 있는 것이다. 정책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상대방도 생각해야 한다. 좀 더 장기적이고 통 큰 차원의 대북·대남정책이 필요한 때이다.


<김창희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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