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파소의 변
을파소의 변
  • 김진
  • 승인 2008.07.1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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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높은 시청률로 인해 촬영지가 관광지로 변하고 각종 상품의 이름부터 CF에 이르기까지, 적잖게 경제유발효과를 냈던 <주몽>이란 드라마를 기억할 것이다.

그 드라마를 보면 <계루, 소노, 절노, 관노, 순노>라는 부족 간의 명칭이 자주 등장했다.

그것은 고구려 형성의 주축이 된 씨족 5개집단의 명이며, 이를 5부 체제라고 칭한다.

고구려 초기에 고국천왕은 이들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5부 체제를 방위에 따라 동부, 서부, 남부, 북부의 4부 체제로 바꾸어 버린다.

그리고는 4부에 명을 내려 인재들을 천거토록 하였는데, 그때 국상으로 추천된 인물이 동부의 안류라는 사람이었다. 추천을 받은 고국천왕은 안류를 국상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안류는 자신이 적임자가 아니라고 고사하며 훗날 진대법으로 유명한 을파소를 천거하게 된다.

백성의 질곡을 아는 정치

당시 을파소는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초야에 묻혀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안류의 천거를 받은 고국천왕은 을파소를 우태라는 작위와 중외대부의 벼슬을 주었으나, 이정도의 관직으로는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다고 여긴 을파소는 "대왕께서는 현명하고 어진 이를 가려내 높은 관직을 줘 큰 사업을 이루시라"라는 변으로 겸손히 거절했다.

을파소의 변을 듣고 그의 말뜻을 알아챈 왕은 그에게 국상직을 맡겼다.

‘국상’은 고구려 시대 재상을 부르던 명칭으로 지금의 총리를 일컫는다. 시골농부의 발탁에 신하들과 외척들은 크게 반발했지만, 왕은 을파소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명을 거역하는 것과 같이 처벌하겠다며 힘을 실어줬다.

을파소 역시 왕의 신임을 저버리지 않고 ‘진대법’을 만들어 백성들을 굶주림과 착취로부터 구해낸다. 이 법은 명문화 된 법으로 백성을 구제한 최초의 사회복지법일 뿐 아니라, 훗날 고려시대 의창과 조선시대 상평창의 모태가 되어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백성의 질곡을 아는 재상만이 펼칠 수 있는 정치였다.

재상(宰相)의 본뜻은 나눔과 베품

본디 ‘재(宰)’는 요리를 하는 사람이나 고기를 나누어 주는 사람을 뜻하고, ‘상(相)’은 사람의 눈과 같은 나무라는 의미이니 소경의 지팡이처럼 보행을 돕는 사람을 이르던 말이다. 재상이 중국 진(秦)나라 이후부터 최고 행정관을 뜻하게 되었지만, 을파소야 말로 본래 의미에 걸 맞는 재상이라 할 수 있겠다. 진대법 이후 전근대사회에서 시행되었던 여러 구휼재도들은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계급 간 대립을 완화시켜 사회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데 큰 몫을 하였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제와 같은 도덕의식은 계층 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사회의 구조를 보면 계층 간 대립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IMF 때 봤듯이 나라 안팎의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괴리는 커질 수밖에 없으니, 이럴 때 일수록 재상의 역할을 감당해 줄 ‘큰사람’들이 절실하다.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국익을 위해 을파소를 천거했던 안류와 같은 사람, 백성의 질곡을 살펴 구휼에 힘을 쓴 을파소와 같은 사람, 그리고 두 인재의 능력을 믿고 등용한 고국천왕과 같은 사람들 말이다.

남 앞에 나서서 큰소리치는 정치인은 많지만 개인의 욕심을 버릴 줄 모르고, 국민을 편안히 모시겠다는 강부자 내각은 국민의 질곡을 모르고, 인재를 가려 기용해야 할 공기업수장들의 자리는 낙하산시비가 끊이질 않으니, 아! 이 난국을 누가 이끌꼬!

김진<경희대학교 무역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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