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삶이 보인다
길따라 삶이 보인다
  • 김효정
  • 승인 2008.04.24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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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 심원 갯벌

어미는 오늘도 갯벌에서 삶을 캔다.

갯벌이 키워 낸 어미의 자식들은 이제 사회로 나가 자신들의 몫을 해가며 든든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오늘도 여전히 광주리 하나 옆에 끼고 바다로 나들이를 가는 늙은 여인의 깊은 주름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고 있다.

“내가 여그서 바지락 캐가며 평생을 살아 왔는디 여그가 보물 창고여, 보물 창고. 이제 여그가 집보다 편혀”

허리가 휘고 손톱 밑은 흙 때가 하나의 무늬를 새겼지만 그마저 이젠 정겹다. 익숙한 손놀림, 그것은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자 그만의 발명품이다.

굽은 허리로 광주리 가득 캐 낸 바지락들이 싱싱하다. 광주리를 들어 올릴 힘이 없는 늙은 여인의 두 팔은, 그러나 갯벌을 가로 지르기 시작한다.

뭍으로 올라오기 위한 그 짧은 여정은 갯벌을 화폭 삼아 하나의 붓질처럼 큰 획을 그어 간다. 구비구비 그가 살아 온 삶의 모습이 그 안에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눈물과 회한과 보람이 함께 하는 이 세상 모든 어미들의 흔적이다.



▲ 전주보건소 예방접종 하던 날

사람이 가는 곳엔 언제나 길이 있다.

아침 일찍부터 하나 둘씩 모여든 사람들. 차들이 줄지어 서 있어야 할 곳을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이 길을 냈다. 이 곳에서 바퀴 달린 모든 것들은 설 곳을 잃었다.

사람이 낸 그 길 안에는 기다림에 대한 미덕과 우리네 일상이 함께 담겨 있다. 저 줄 끝에 도달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은 나의 목표이자 곧 모두의 목표다. 이를 위해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은 그래서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그 길 위에서 어제 본 드라마의 결말과 옆집 아들 장가 가는 소식, 오늘의 날씨가 하나의 화음을 이룬다.

지독히도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주는 소중함을 그 길 위에서 조금씩 알아간다.

이제 하나의 목적으로 만나 길을 만들어 냈던 사람들은 곧 흩어져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사라진 길 위에는 또 다른 길이 그려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 언제, 어느 곳에서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길은 그렇게 사람과 함께 한다.

김효정기자 cherry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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