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넘어 행복한 삶으로
변화를 넘어 행복한 삶으로
  • 유춘택
  • 승인 2008.04.1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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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젊어서 자유로이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어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좀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아,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리에 누워서야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을 곳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는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 어느 성공회주교의 묘비에 기록된 글이다.

세상은 변화를 주도해 나가는 사람들을 엘리트라고 하고 능력 있는 자로 인정해 준다. 원대한 포부를 간직한 젊은 시절에 누구나 한번쯤은 인생의 성공을 위하여 세상을 내 힘으로 변화시키리라는 다짐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변화하는 자만이 세상에 제대로 발맞춰 살아가는 이들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게 바로 현실인 것이다.

변화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가 이전과 달라질 때 주로 사용되는 말이다. 변화를 해야 한다는 자체에는 공감을 하지만 자신이 변화되고 변신을 해야 되는 주체라고 생각을 할 때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에 주저한다. 즉 변화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결과도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정에서 아버지들이 힘들다고 한다. 가장의 권위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주도해오던 가장들이 이제는 아내와 자녀들의 합의에 의하여 가정을 가꾸어 나가야 하는 시대로 변화가 되었고, 직장에서는 아래 사람들을 받들어야 하고 오히려 눈치까지 보아야하는 고통이 뒤따르기에 어렵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사항이 많아져 그에 따른 교사들의 고충도 많다고 한다. 교육의 주체가 학교로부터 수혜자인 학생으로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몇 년 전부터는 정부에서 공직사회 안에 ‘혁신’이라는 과제를 던져 주어 많은 공직자들의 머리를 쥐어짜게 만들고 있다. 변화를 시키라고 하니 무언가를 바꾸긴 해야겠는데 기존의 것에 익숙해진 그들이 쉽게 혁신의 한가운데에 설 수 있었을까 싶다.

모든 이들을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 있는 변화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변화를 시도하고자 할 때마다 세상은 들썩거린다. 변화에 만족하는 이도 있겠지만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현명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이 어리석고 나태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대처하여 나가는 데에는 변화를 대상으로 바라보지 말고 자신을 변화의 주체로 삼는 것이 하나의 방안일 것이다. 위에 앞서 언급했던 글에서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변화는 자신으로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다. 내가 바뀌어야 가정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고,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우리는 모두 변화를 바라보기만 하는 관객이 아니다. 그 변화 속에서 적어도 함께 부딪혀가며 살아야 하는 액션배우들인 것이다. 그런데 우린 이제까지 모두 관객의 입장에서 변화를 바라봤던 것은 아닐까? 나름대로 제 3자의 입장에서 변화를 평가하고 나의 입맛에 맞추려고만 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변화의 주인공이고 주체라는 생각을 가지고 나 자신부터 변화해 보면 어떨까?

문명이 발전해 가고 산업화 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은 살아가기가 힘들다고들 말한다. 그럴수록 우리는 역사 앞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면서 변화와 발전을 모색하여야 한다. 풍요로운 삶보다는 살기 좋은, 어쩌면 살아갈 맛이 나는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변화를 꾀하여야 한다. 변화의 주체는 변화의 대상이 아닌 자신이어야 한다. 남을 원망하고, 남의 탓만을 하다가 실패한 삶으로 살아갈 일이 아니라 내 자신이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변화에는 인내와 고통이 수반되기도 한다. 인내와 고통의 변화를 넘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이 시간 내가 만들어야 한다. 천상병시인의《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와 같이.

유춘택<전주시자원봉사연합회장/상산고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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