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가 있어서 행복한 세상
눈과 귀가 있어서 행복한 세상
  • 김복현
  • 승인 2008.03.14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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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세상살이가 눈으로 보아야 속이 시원해지는 세상으로 변했다.

백번 들어도 그것은 소문일 뿐이고 한번이라도 보면 그것은 분명하게 인정을 하고 있는 세상살이가 된 것이기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百聞(백문)이 不如一見(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온통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몸소 체험하거나 보지 않으면 말할 자격도 인정하지 않으려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생활 문화에는 시각적인 것이 큰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다른 어느 것 보다도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 큰 비중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겠다. 보는 것을 압축시켜 나타난 단면이 오늘날 정치판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요즈음 때가 때인 만큼 총선을 앞두고 있는 국회의원 예비 후보자들의 대형홍보물거리에 나가보면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선거 때만 해도 길거리를 횡단하는 현수막으로 본인을 알리는 홍보전을 폈지만, 지금은 번화가 좋은 빌딩건물 한 면을 온통 차지하는 그리고 인물사진까지 겸한 홍보물이 등장하여 시민들의 눈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그 가격도 보통사람들의 생각을 초월한 만만치 않은 가격이라 한다. 이러한 정치 홍보물 비용을 국민이 떠안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멋지게 장식한 모델 하우스 홍보물이나, 백화점의 쇼윈도와 네온사인 그리고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TV광고 홍보물이 대형 건물 벽걸이용으로 걸려 있는 모습은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극장입구에 걸려있는 영화선전 홍보물만 그렇게 대형으로 장식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덧 정치 홍보물들도 이렇게 대형으로 변하고 보니 우리는 정말로 눈으로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홍보물들이 범람하는 시대를 이미지 시대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하다보니 우리는 물건을 구입할 때도 물건의 유용한 용도와는 관계없이 시각적으로 눈에 잘 보이는 외형의 모습에 따라 결정할 때가 많으며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눈으로 보아야 속이 후련하리만큼 보는 일에 열중한다. 그래서 같은 값이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는지? 오늘날 우리는 눈으로 듣고 눈으로 보는 의식으로 가득 찬 환경에 감싸여 있다. 그래서 각광을 받고 있는 분야가 바로 디자인 사업이다. 지금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실내 디자인,자동차 디자인, 헤어 디자인, 건축디자인, 책 디자인, 정치 홍보 디자인 등이다. 대부분 시각에 의존하는 것들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즉흥적이고 속도감이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 보여 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조금 지나면 곧바로 그 가치가 떨어지게 되는 것들이 많다 특히 사실과 차이가 날 때와 시대의 흐름에 부합되지 않을 때는 그 가치가 손상되어 우리의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언제나 가치판단은 뒤로 미루고 현재 눈으로 보이는 것들만을 믿으려 하는 습성이 단연 지배적이다. 오늘날 바쁜 세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사려 깊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기형적이고 즉흥적인 것에 이끌려 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조물주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보배로운 것을 주셨다 그것은 바로 소리이다. 피곤하고 어려운 하루하루이지만 우리는 소리를 담을 수 있는 귀가 있음은 자연의 큰 이치를 알게 하는 역할까지 해주고 있어서 다행스럽다. 피로에 지친 몸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 넣기 위해 등산을 하다보면 들릴 듯 말듯 하는 골짜기 물소리 얼마나 정겹던가, 산에 오르다보면 낮선 새들이 울어대는 새소리 우리의 마음에 와 닿는 소리가 아니던가, 어느 곳 어디를 가든지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우리나라에서 어린 아이 울음소리 들으면 이 또한 얼마나 정이 끌리는 소리던가, 신나게 웃어대는 웃음소리, 듣기만 해도 얼마나 좋은가, 우리는 이렇게 소리를 사랑하고 있다. 얼마 전에 우리는 눈으로 보고 듣는 좋은 시간을 갖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뉴욕 필의 평양공연 장면이다.

이 공연은 우리에게 뜻하는 바가 너무도 크다. 1959년 소련의 3개 도시 (모스크바, 레린 그라드, 키예프) 공연으로 냉전의 얼음장을 걷어냈던 일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리라고 예측도 해 보지만, 이번 평양공연은 우리에게 그야말로 희망의 소리였다. 북한과 미국은 1950년 이후 60년간 적대 국가 관계였다. 그러한데도 평양에서 미국 국가가 연주되고 성조기에 평양시민은 기립해서 예의를 갖추었다는 사실은 북한의 분명한 변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태극기는 평양에 아직 한 번도 게양되지 못했으며 애국가 또한 한 번도 북한 땅에서 연주된 적이 없다. 북한의 국가와 인공기는 남쪽 하늘에 펄럭인 적이 있는데 이 어찌된 운명인가? 평양의 태극기는 볼 수 없으며 베토벤의 ‘운명’과 ‘아리랑’ 소리는 울려 퍼지는데… .

김복현<익산 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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