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 너무 서두르면 쓰나미·아노미 올 수도
영어교육, 너무 서두르면 쓰나미·아노미 올 수도
  • 한기택
  • 승인 2008.02.10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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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영어 과외를 받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게 하고,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웬만한 생활영어는 거침없이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영어교육 문제가 이렇게 될 수만 있다면 모두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토목공사식 강행 안 돼’ ‘영어교육 불안해’ ‘사교육에 학부모 등골, 꼬부랑 될라’ ‘영어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어야 하느냐?’ 등의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으니 걱정이다.

인수위가 발표한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의 주요골자를 보면 ▲올해부터 2014년까지 7년 동안에 걸쳐 추진하며 ▲향후 5년간 영어교사 2만3000명 채용 ▲2010년부터 초등학교 영어수업 확대 ▲올해부터 영어교사 연수 확대 실시 등이다.

이 프로젝트의 시행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영어교과서를 회화중심으로 개편하여 2010년에 보급하는 것이다. 제8차 교육과정이 이미 확정 고시되어 2009학년도 고교 신입생부터 적용하는 단계에 와 있는데, 단기간 내에 교육과정을 재 개정하고 교과서를 다시 만드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교육부가 2006년 5월에 전국 초·중·고 영어 담당 교사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영어로 수업이 가능한 교사 수는 전체 영어교사의 49.8%인 1만6171명 밖에 되지 않으며, 1주일에 1시간 이상 영어로 수업하는 비율은 전체의 18.5%에 그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약 1조7천억원의 예산으로 1년에 3천명씩 국내외에서 6개월 심화연수를 실시한다고 하지만 6개월 연수로 과연 영어로 수업을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해마다 3000명이 심화연수를 받을 때에 연수교원에 대한 충원 문제도 걱정이 된다.

또한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 전용교사 2만3천명을 확보하여 교단에 투입한다’고 하지만 이는 정규 영어교사 3만3천162명의 69.4%에 해당하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이다. 교육현장에서 일부 원어민 교사들의 부적격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사명감과 실력이 있는 우수한 사람을 단기간 내에 확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2만3천명의 사후관리와 다른 교과와의 형평성 문제도 걱정된다.

다음으로는 대화중심의 수업을 실시하기 위해 학급당 학생 수를 현재 35명에서 23명으로 12명이나 줄여야 하는데 2∼4년 내에 줄이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며, 교총 대변인에 따르면 ‘학급당 학생 수를 전국적으로 한명 줄이는데 1조8천억 원이 든다는 조사도 있다’고 하는데, 현재 교육예산이 부족하여 민간투자사업(BTL)으로 교실을 건축하고 있는 형편에 예산확보가 걱정되며, 단기간 내에 교실을 증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학급수 증가에 따른 교사의 증원, 교감 증치, 과대학교 증가, 교육기자재의 추가 확보 등의 문제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인수위는 ‘3~4학년 주 1시간, 5~6학년 2시간인 영어 수업시간을 2010년부터 주 3시간으로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어떤 교과의 시간을 줄일 것이며, 시간이 줄어드는 교과의 소외감과 교사 수급 또한 걱정이다.

다음으로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토익이나 토플 수준의 영어능력평가시험을 실시한다고 하는데 토익이나 토플 수준의 시험은 학생, 학부모, 지도교사 모두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며, 만약에 영어능력평가시험이 대학 입시에 반영될 경우, 고교생은 물론 초·중학생까지 영어 사교육에 몰입 할 수도 있다.

끝으로 학생들의 영어 수준에 따라 ‘수준차이 반’을 운영한다고 하지만 영어수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학생과 학부모는 강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으며, 내신성적 산출, 인성교육, 사교육비 증가 등에 새로운 문제가 야기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프로젝트라고 해도 초·중·고교의 공교육 내실과 사교육비 줄이기를 함께 이루지 못한다면 성공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교육을 청계천 공사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거나 건축처럼 너무 서둘러서는 안 되며, 너무 서두르면 영어 쓰나미-아노미 현상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해 본다.

한기택<코리아교육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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