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제겐 천부적인 팀워크DNA가 있나봐요"
김지영 "제겐 천부적인 팀워크DNA가 있나봐요"
  • 박공숙
  • 승인 2008.01.10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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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 주연배우 김지영.
태극 마크 한번 달아보는 게 소원이었던 뽀글뽀글 퍼머 머리의 송정란. 드디어 고대하던 국가대표가 돼 미숙(문소리 분), 혜경(김정은)과 함께 태릉선수촌에서 ‘아줌마 3인방’을 이룬다. 그러나 까칠한 감독에다 기어오르려는 까마득한 후배들 때문에 가슴팍만 펑펑 두드린다.

그렇다고 물러설 송정란이 아니다. 보약 복용으로 도핑테스트에서 지적받아 이를 핑계로 노장 선수들에게 윽박지르는 감독에게 ‘보약 도둑 찾았다’며 너스레를 떨어 기막히게 하고, 선배를 선배로 여기지 않는 후배들이 덩치 큰 다른 종목 선수들에게 봉변을 당하자 기합 섞인 커다란 목소리로 순식간에 제압해 후배들의 신임을 받는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 제작 MK픽처스)의 웃음은 대부분 정란 역을 맡은 김지영에게서 흘러나온다. ‘전원일기’의 복길이로 대표되며 늘 우리 곁에 있어왔던 김지영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린다. 마치 ‘지구를 지켜라’로 백윤식이 영화계에 새롭게다가왔던 것처럼 ‘김지영의 재발견’이라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스스로 ‘장정구 머리’라 붙인 헤어스타일은 아줌마 선수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대변해주고, 성대결절에 걸릴 정도로 촬영장 안팎에서 큰 목소리로 동료와 후배들을격려했다. 정란이 팀 주장이었듯, 김지영은 여자들만 떼로 모여 있어 자칫 갈등을 일으킬 여지가 다분한 현장에서 해결사로 나섰다.

“‘전원일기’ 때부터 제겐 천부적인 팀워크 DNA가 있나봐요. 하하. 사실 시작하기 전에는 다들 걱정이 많았죠. 문소리와 김정은이 왠지 이질적인 느낌을 주잖아요.

제가 술자리 만들고, 술자리에서 분위기 조성하며 다리 역할을 하긴 했죠.” 엄태웅이 김지영을 두고 “남자친구 같다. 어떨 땐 왜 친해졌는지 모르겠다”고 파안대소하며 말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김지영은 영화에서 거침없는 모습을 보인다. 아줌마가 아닌 아저씨일지도.

“심하게 뽀글뽀글한 퍼머 머리를 하면서도 수십 번 감독님께 여쭤봤죠. 제가 결정한 헤어 스타일이에요. 저라고 왜 예뻐 보이고 싶지 않았겠어요. 여배우인데. 하지만 역할에 가장 합당한 아름다움, 그 역할 자체로 충분히 예뻐 보일 수 있는 것, 그 의미를 늘 되새기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감독님과 스태프들을 믿은 것 같아요. 이렇게 해도 튀거나 찌그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요.” 촬영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캐스팅에 변화가 있기도 했지만 김지영은 정란 역으로 출연 제의가 들어왔고 그가 응하자마자 그대로 결정됐다.

“심재명 대표(MK픽처스)님이 절 강력하게 추천하셨대요. 드라마 ‘내 사랑 못난이’를 보고 저를 점찍었고, ‘전원일기’조차 보지 않아 제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감독님께 밀어붙였다고 하시더군요. 저요? 사실 시나리오를 읽기도 전에, 제 캐릭터가뭔지 알기도 전에 시나리오 첫 장에 적힌 감독님의 글을 읽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습니다.” ‘일등주의가 만연한 이 세상에 진정한 승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땀 한 방울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송정란이 그저 웃기기만 하고, 활력을 주는 캐릭터는 아니다. 늘 밝게 웃고 남편에 대한 사랑조차 호들갑스럽게 드러내는 송정란이 생리 중인 사실을 숨기고 경기를 뛴 후배에게 “울지 마라 가스나야, 그라고 니들 생리 조절한다고 호르몬제 먹지 마라. 나처럼 아(아기) 못 갖는다”고 말할 때는 그의 아픔, 아니 여자 운동선수들의 아픔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말 한 마디, 눈빛 하나, 고갯짓 하나로 아픔과 상처를 표현한 걸 보면서 임순례 감독님의 힘을 느꼈습니다. ‘울지마라 가스나야’ 그 대사를 하는데 눈물이 쏟아져나와 숱하게 NG를 냈어요. 정란이라면 눈물을 참고 말했을 테니까요.” 그러면서 또 그 장면이 생각나는지 어느새 김지영의 눈은 빨개졌고 눈물마저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촬영하면서 배우들이 정말로 ‘우리’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레프트윙을 맡아 왼쪽 발목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아팠어요. 너무 테이프를 붙여 나중엔 살점이 떨어져 나오기까지 했죠. 정은이는 골반이 어그러져 매일 진통제를 맞고 촬영장에 왔습니다. 진통제 강도가 날로 강해져 나중엔 ‘너 약물 중독되겠다’고 우스갯소리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어느 누구 하나 ‘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부상이심해 촬영을 못나가 소주를 사놓고 동료를 기다리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이렇게 함께 뭔가를 만드는 게 정말 대단한 거구나 새삼 깨달았죠.” 힘들었지만(경기 장면 촬영할 때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기 싫을 정도였다며 웃는다. ‘아예 날 여기에 묻어라’ 그랬다며) 함께였기에 소중했던 날들이 떠올라 영화를보며 눈물을 참느라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작품 기획해서 열악한 환경인데도 이렇게까지 끌고 온 심재명 대표에게 첫 번째 박수를 보냈고, 이런 작품 만들어준 임순례 감독님께 감사했어요. 그리고 스태프들, 촬영 내내 도움을 준 핸드볼 선수와 감독님 등등.” 김지영은 “제 아무리 인기 있는 배우라도 ‘나 좀 봐라’라는 건 유치하지 않나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죠”라며 또 한번 ‘우생순’의 팀워크를 자랑한다.

“결혼하고 어른이 어른으로서 존경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는그는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잘 서 있는 배우, 그런 현명한 배우가 되고 싶다” 고 말했다.

‘우생순’ 배우들과 인터뷰할 때 빼놓지 않고 묻는 질문이 당시 핸드볼 대표팀 감독이었던 임영철 감독의 인터뷰 다큐멘터리 필름을 본 소감이다.

“최불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본 것 같았어요. ‘전원일기’ 때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삶의 무게를 뒷모습으로 연기하시는 걸 보고 소름이 쫙 돋았는데 바로 그 느낌이었습니다.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어울릴 수 있을까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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