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조한경
아침햇살-조한경
  • 이수경
  • 승인 2007.12.1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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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삶

서양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은 많이 다르다. 우선 외양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정신도 다르다. 다른 것이 어디 그뿐이랴. 예를 들자면 우리는 편지 봉투에 주소를 쓸 때도 자신의 이름을 맨 나중에 쓴다. 그러나 유럽은 자신의 이름을 맨 앞에 쓴다. 우리는 우리를 소개할 때도 성부터 말하지만 저쪽 사람들은 이름부터 말한다. 우리는 전체가 우선이라면 저쪽은 개인이 우선인 것이다. 연속선상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기억할 때 그의 직장과 지위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를 불러줄 때도 ‘부장님’, ‘사장님’, ‘교수님’, ‘목사님’ 등 그의 지위를 의식한 호칭을 쓴다. 그래서 물론 개인 간에 편차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방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저 쪽 사람들은 상대방의 이름을 아주 잘 기억하는 편이다. 우리와 저쪽 사람들 사이에 다른 것 중에 다른 것은 아마 유머 감각일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말을 삼가는 것을 미덕으로 배웠다. 선생님은 물론이고 어른들 앞에서 반론을 펴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정당하다 해도 대드는 꼴이 되었고, 당연히 꾸지람을 들었다. 어른들 앞에서는 조신하게 굴어야 했고, 여섯 살 어린아이를 둔 부모에게조차 ‘댁의 아이는 젊잖아요!’라는 평을 듣는 것이 기쁨이었다. 젊잖다는 ‘젊지 않다’는 말의 준 말이다. 젊잖은 사람은 나중에 근엄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앙드레 콩트 스퐁빌은 우리가 ‘무엇인가 불안하고 의심스러운 것을 숨길 때’ 근엄을 가장한다고 한다. 반면 유머는 그러한 답답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옛날 어떤 택시 기사 얘기다. 영업용 택시기사는, 누구나 알듯이, 개인택시를 갖는 것이 꿈이다. 그가 마침내 개인택시를 갖게 되었다. 개인택시는 일하면 일하는 만큼 자기 수입이 된다. 그래서 그도 쉬지 않고 일했고, 많이 벌었다. 그 택시 기사는 밤중에 일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좀 더 일하면 손에 들어오는 할증요금까지 돈을 세는 맛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한 손님만 더 받고 들어가야지, 한 탕만 더 뛰어야지, 하면서 그는 거의 매일 녹초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어느 날 새벽 그는 자신의 집 앞 개인택시 운전대 위에 얼굴을 묻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과로사였다.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오직 벌기만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근엄하게만 살 수도 없다. 일을 한 뒤에는 휴식이 필요하고, 학기가 있으면 방학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웃을 일도 많고, 울 일도 많고, 통쾌한 일도 있고, 답답한 일도 있다. 따라서 답답한 상황에서도 슬픈 상황에서도 언제나 웃을 일 통쾌한 일도 있게 마련이다. 답답한 상황 슬픈 현실만을 응시한 채 그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미련한 것도 없다. 근엄한 일상이 있었으면, 그 후에는 반드시 거기로부터의 탈출과 해방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유머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유머는 필요하다. 어떤 의사가 진료를 마친 뒤 환자에게 말했다. “선생님, 암입니다. 여기 보세요...” 그 말을 들은 환자가 물었다. “저보다 심한 암환자는 죽어야지요?” 우리나라 여자와 결혼해서 잘 알려진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유머는 대단하다. 그의 영화의 한 대목이다. 주인공이 질문하고 대답한다. “우리에게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가 세 가지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그것이다. 거기에 그는 또 대답한다. ‘내 개인을 보면, 나는 나이고, 나는 나의 집에서 왔고, 그리고 나는 그 곳으로 돌아간다.’ 고”

우리 지역 사회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근엄한 지대에서 근엄한 자리를 지킨 인물이 있다. 검사생활을 거쳐 변호사가 되어 독재 권력에 의해 핍박받던 양심수 혹은 정치범들의 변호에 힘을 기울였고, 자신 또한 두 번에 걸쳐 감옥살이를 했으며, 국제앰네스티 한국위원회 전무이사, 민주회복국민회의 중앙위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등의 직분을 맡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한 승헌 변호사 이야기다. 그런 그가 ‘유머산책’이라는 책을 냈다 한다. 근엄하게만 알고 있는 그의 책이기에 더욱 궁금하다. 아마 청량제처럼 시원한 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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