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다문화의 경계 '웨스트 32번가'
<새영화> 다문화의 경계 '웨스트 32번가'
  • 신중식
  • 승인 2007.11.0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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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국계 갱단의 야망과 배신을 그린 느와르 ‘웨스트 32번가’(제작 CJ엔터테인먼트)는 문화적 경계와 충돌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계 미국인인 마이클 강 감독은 미국 내 소수인종의 정체성에 대한 자문자답을 다수인종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대중적인 범죄물의 형식을 택해 만들었다. 주류 문화와 비주류 문화의 충돌, 소수집단 내부의 분열, 개개인의 모순된 심리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스크린 안에서 시각적으로 살아나고 있다.

서울 유흥가로 착각될 만큼 한글 간판과 네온사인이 어지럽게 줄지어 있는 뉴욕한인타운. 룸살롱 지배인 전진호(정준호)가 거리에서 총 세 발을 맞고 숨진다. 용의자로 체포된 것은 14세의 한국계 소년이다.

젊은 변호사 존 김(존 조)은 이 사건을 맡기 위해 용의자의 누나 라일라(그레이스 박)를 찾아가 설득한다. 로펌으로서는 인종과 청소년 문제가 얽힌 사건이라 언론에 노출될 확률이 높기 때문. 존에게는 같은 한국계인 이 가족을 위하는 마음과 업무에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뒤섞인다.

존은 소년이 무죄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뉴욕의 지하세계로 파고들고 숨진 전진호 대신 지배인 자리를 꿰찬 마이크 전(김준성)과 전진호의 여자친구이자 룸살롱 접대부인 숙희(제인 김)를 만난다. 마이크에게는 한국 문화의 잔류가 있고 존은 마이크에게서 알 수 없는 형재애를 느낀다.

할리우드 액션영화에서 차이나타운이 매력적인 싸움터로 애용되듯 이 영화에서 뉴욕 한인타운은 힙합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화려한 색채로 묘사된다.

캐릭터들은 생생하고 상징적이다. 존 조가 연기한 재미교포 2세 변호사는 한국어를 거의 모르며 미 주류 사회로 편입하려 애쓰고 있고, 김준성이 연기한 1.5세 조직폭력배는 ‘동생’들을 이끌고 한인타운 밤거리를 배회한다.

그레이스 박이 연기한 교포 1.5세 여성은 자신의 핏줄을 감싸안으려 필사적으로애쓰고, 제인 김이 연기한 불법체류자 숙희는 늘 불안감에 시달리고 한없이 무기력하다. 이들 앞에서 선악을 가르는 잣대는 무의미하고 모호해진다.

배우들은 실제 삶의 모습을 바탕으로 각자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있다.

존 조는 한국계로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신인 배우로 정과 야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홍콩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김준성은 유창한 영어와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번갈아 구사하며 현실감을 높인다.

다만 짜임새가 허술해 매끄럽지 못한 장면들이 때때로 나오고 조연배우들의 어색한 한국어가 예기치 않은 웃음을 불러일으키면서 긴장감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2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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