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명품 - 동상 곶감
전북의 명품 - 동상 곶감
  • 박명규 기자
  • 승인 2000.11.1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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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어린 아이가 하도 울어대기에 호랑이가 온다고 해도 그치지 않더니 곶감소리에 울음을 뚝 그치더라는 전래동화가 있다.
마땅이 아이를 달랠 먹거리가 없던 탓이겠지만 그만큼 곶감은 어른 아이 할것없이 훌륭한 먹거리요, 오랜 기호식품이었다는 증거다.
우는 아이가 뚝 그쳤음직한 곶감, 호랑이가 곶감이 무서워 혼비백산했다던 그 곶감은 겨울기호품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 곶감 가운데서도 동상곶감은 오래전부터 가장 뛰어난 맛과 품질을 자랑하고 있다.
얼마나 그 맛이 뛰어났으면 일제시대만 하더라도 동상 곶감은 일본인들이 독차지하고 정작 마을주민들조차 제대로 된 곶감맛을 못보았다고 한다.
도회지에서 이곳으로 시집와 45년째 곶감깎기는 계속했다는 권이순할머니(67)은 "시집 오던 첫해 친정 시어머니가 함경도 친정집에 가면서 행여 일본사람들에게 들킬까 솜이불에 곶감을 숨겨가던 모습이 선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동상곶감이 귀한 음식이었다는 말이다.
"그때 귀한 맛이 지금도 변함없다"는게 권 할머니의 말.
동상에서 곶감이 생산된것은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 정확치 않다.
마을 사람들은 조선시대 중엽 이후부터 동상에서 나는 감과 이 감을 깎아 만든 곶감이 유명했던 점으로 미루어 이보다는 훨씬 이전부터였을 것으로만 짐작하고 있다.
고종시는 이곳 동상지역에서만 자라는 씨없는 감을 이르는 말.
조선시대 고종임금께 진상하였다 하여 고종시라 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실은 씨없는 감을 이르는 말이다.
고종시는 완주군 동산면 일대 운장산 해발 400m이상의 산자락에서만 자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맛 또한 뛰어나 전국적인 진품이 된지 오래다.
맛 뛰어난 고종시를 깎아 만든 곶감 역시 달고 차지며 시원한 곶감 고유의 맛을 지닌것은 당연한 이치.
그러나 동상 곶감이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그래서 임금님께 진상 올린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자연조건이 뛰어나고 그야말로 산자수려한 풍광속에서 자라 병풍해가 없고 당도가 높은 탓이다.
맑디 맑은 바람을 치며 자란 감만을 골라 깎아 늦가을 내내 다시 그 맑은 바람과 청명한 햇빛 아래 말린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
동상 곶감은 특히 아직도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손으로 직접 깎아 말리는 수고로움을 고집하고 있다.
일손이 달리고 마땅히 곶감깎이의 고단한 일을 하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지만 곶감도 음식인 이상 정성스레 손길이 닿아야 한다는 고집 때문이다.
기계에 닿은 부분에 곰팡이가 생겨 제맛을 지닐수 없는것도 손깎이를 고집하는 이유다.
남정네들이 산비탈을 올라 한 바작 감을 나르고 아낙들은 양지편에 모여앉아 곶감을 깎던 정겨움과 정성스러움이 동상곶감이 제맛이라는게 이마을 곶감 작목반장 김명옥씨(43)의 설명이다.
바쁜 추수철을 피하기 위해 몇해전부터는 저온저장고에 저장했다가 일손이 한가한틈을 타 곶감을 깎지만 손으로 깎는것만은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동상곶감은 감 자체에 씨앗이 없어 다른 지역상품에 비해 모양이 불균형하고 햇빛에 말린탓에 제색깔을 지키지 못해 상품성이 뒤지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동상에서 해마다 생산되는 곶감은 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00여 농가에서 400동에서 700여동.
한동이 100접, 한접이 100개씩이니 한해 400만개에서 700만개가 생산되는 셈이다.
올해는 해거름으로 흉작이 들어 400여동을 수확, 8억여원을 벌어들일 계획이다.
전국적인 명성을 타고 유명백화점과 농협 하나로마트로 팔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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