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우리에게 경이이다. 이 문예지가 탄생한 그 시대 60년대 말은 우리나라의 근대적 산업화가 고동을 울리기 시작한, 낭만적 상(像)으로서의 詩가 황량한 여정에 돌입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내, 뿌연 하늘과 오염돼 흐르는 죽음의 물, 영상과 인터넷 매체에 이르기까지 인공어와 反語의 조작된 운률이 창궐하기에 이르고 있는 오늘이다.
그러한 절망과 단애에서 맑게 솟아오르는 덕유산의 햇살과 누엿누엿 해 넘어가는 만경 들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집어 묶어오고 있는 독불이기에 경이요 기적인 것이다. 그래서 전북문학은 우리의 소중한 정서를 지치지 않고 가꿔 온 살아있는 발자취임에 틀림없다. 조 병화 시인은 이를 `인간정신의 맑은 피로 이어져라'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하는 영혼들이 출몰했을까'라고 사색하고 있다. `전북문학이여, 인간정신의 맑고, 굳센 피가 되어라'고 분기시키고 있다.
종교철학자 황 필호 교수는 `전북문학이 지금처럼 여일하기를' 기원하는 글에서 `전북문학'을 우직하나 쉬임없이 걸어온 황소걸음의 미학으로 예찬하고 있다. `은근과 끈기'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한민족의 장점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라고도 했다. 모두가 이 땅에서 누천년을 이어온, 앞으로도 영원히 번져가야 할 생명에의 갈채라고 할 수 있다.
전북문학을 담아 온 숱한 사랑과 정성의 어휘, 운률은 바로 그 많은 이름없는 이들의 참여와 공감이기에 더욱 더 보람이요 기념이라 할 것이다. 201호에 오기까지 천명이 넘는 사람들의 심상이 실렸고 그로부터 70인이 넘는 문인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그처럼 시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고 아름다움의 열정으로 드높은 곳이라는 증명이다. 정녕 살 맛이 나는 땅임을 사해에 자랑하고 있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발행해 온 최 승범 시인의 `숲이게 동산이게'는 `전북문학'의 의의를 함축하고 있다. `겨레의 문학에도 내 고장의 살 맛에도, 해맑은 빛살 일렁이는 숲, 동산이자 꿈이었다'. 참으로 지역의 또 하나 커다란 축적이요 기원이다. 이러한 보배들이 줄줄이 피어남으로써 신세기의 지역 앞날이 더욱 풍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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