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바로 석지 채용신선생의 탄생 150돌이며 서거 60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리는 "석지 채용신 기념전"이 지난달 28일부터 8월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열리고 있다. 초상화를 비롯 화조, 편지와 관련자료 등 60여점이 수놓은 작품전에는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아우르는 민족사상을 담은 값진 자리라는 사계의 평이다.
▼채용신선생은 전통적 무가(武家)집안 출신으로 그 자신도 무과(武科)에 급제, 20여년간을 관직에 봉직하였으나 초상화가로서 활동이 더 두드러져 1900년에는 어명으로 태조, 숙종, 영조, 정조의 어진(御眞)을 이모(移摸)해서 고종의 총애를 받기도 했다. 19세기 말에 인 개화파와 위정척사파(衛政斥邪派)간의 사상논쟁에서는 척사파에 서기도 했다
▼1906년 치욕의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자 관직을 사임하고 전주로 낙향, 전북일대를 돌며 우국지사와 항일의병들의 초상을 그리는데 석지가 그린 근대 초상의 압권으로 불리는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 매천(梅泉) 황현(黃炫=1855~1910),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1833~1906)초상화는 모두 이 무렵에 그렸다.
▼이밖에 전주 남고산성의 관성묘(關聖廟)안에 그려진 삼국지연의도(三國志演義圖)도 채용신선생 작품으로 전해진다. 이렇듯 선생 말년에 이고장에서 많은 작품활동을 벌였으나 짐짓 그에 대한 추모전 하나 열지 못한 고향의 아쉬움이다.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