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권혁일 박사(김제삼성정신병원장)
<명의> 권혁일 박사(김제삼성정신병원장)
  • 한성천기자
  • 승인 2002.02.24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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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질환자는 범죄자도, 사회에 해악을 키치는 무서운 사람

도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오히려 우리사회는 그들

을 정신질환자로 만든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빠른 시

일내 가정과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재활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

가 있습니다. 전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구요.”

 일반인들이 선망하는 대학교수직과 선진의술을 배울 수 있는 미국

연수 기회마저 포기하고 정신질환자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재활,

건전한 사회인으로 돌려보내는 ‘인생·인권지킴이’가 되겠다는 소

박한 꿈을 펴고 있는 신경정신과분야 명의(名醫) 권혁일 박사(48·

삼성정신병원장).

  권 박사가 오늘날 정신과분야 명의로 권위를 인정받기에는 ‘인

간존중의 이념을 실천하는 삼성정신병원’이란 문구가 잘 대변한다.

 정읍 옹동에서 교육자 집안(아버지 권오철·89년 작고)의 장남으

로 태어난 권 박사는 대학진학 결정전인 71년 가을까지 만해도 이공

계인 공대쪽에 마음을 두었다.

 하지만 김제여중 교사이었던 아버지는 “의료계의 전망이 밝은 점

도 있지만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여러가지 인생에 있어 보람

이 더 있을 것”이라며 의대진학을 권유했다. 또 전주고 3학년 고기

곤 담임선생도 진학지도때 권 박사에게 “지방의대의 성장속도가

더 빠르므로 서울보다는 전북대 의대를 진학해보라”고 권했다.

 권 박사는 막연히 생각해왔던 공대진학을 지우고 전북대 의과대학

을 택했다.

 의대생이 된 권 박사의 의료계에 대한 상식은 자신과 가족이 아플

때 찾아간 병원과 한의원이 고작이었다.

 의대생이 된 권 박사는 의학서적에 파묻혔다. 새로운 학문인데다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는 생활습관과 맞아 떨어진 것이다. 본

과 1학년때 권 박사는 자신도 명의의 후손임이라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고래(古來)의 우리나라 약방문을 집대성한 ‘향약집성방’(전85

권 30책·허준 ‘동의보감’의 전신)을 권 박사의 선조인 호당공 권

채(權採)가 세종20년(1438년)에 의학자 유효통(兪孝通) 노중례(盧重

禮) 박윤덕(朴允德)과 함께 편찬한 사실을 알게됐다.

또 정읍 옹동에서는 구전(口傳)으로 “조선시대에 중국사신이 정읍

옹동과 칠보에서 명약을 구해갔으며, 이 지역에서 명약과 명의가 나

올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권 박사는 “의대생 시절 알게된 이같은 사실은 의대생으로서의

자긍심을 갖는데 동기부여가 됐다”고 술회했다.

 집과 도서관과 의대 실험실 등지에서 의학공부에 깊이 빠져든 권

박사는 여러 진료과목중 정신의학에 심취했다. 자연스럽게 프로이드

의 ‘정신분석’이나 ‘꿈의분석’ 등 정신분야 의학서적을 섭렵하

게 됐다.

 “의대생 시절 내 스스로 판단컨데 나는 인문과적 성향이 강하다

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의학내에서 인문과적 성격과 적합한 것

을 찾다보니 정신의학분야더군요. 자연스럽게 정신의학 관련 서적

을 많이 읽게됐고, 전공선택 역시 아버지는 내과나 외과를 원하셨지

만 고집을 좀 부렸습니다. 신경정신과를 택한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전북대병원에서 인턴과 전공의 과정을 마친 권

박사는 84년 남원의료원 신경정신과장으로 정신질환자 치료현장을

지켜오다 86년 원광대 의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5년여의 대학교수 생활을 해오던 권 박사는 90년 미국연수를 앞두

고 대학교수직을 접고 정신질환자들의 재활에 보다 실천적으로 활동

하고자 하고자 결심했다. 개원의로 변신했다. 그리고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15년이 가까운 시간을 함께해왔다.

 이 과정에서 권 박사는 정신질환자들의 효율적인 치료를 위해 97

년부터 환자들이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자리를 보아

오다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에 409병상 규모인 ‘삼성정신병

원’이란 병원명으로 확장, 이전했다.

 “정신병원도 일반 병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육체에 병이 들듯

마음도 병이 듭니다. 그 질병을 치료하는 곳이 정신병원입니다. 하

지만 사람들은 정신병원을 인권유린의 대표적 현장이나 쓰레기장처

럼 혐오시설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권 박사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키는 일 외에도

또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다.

 노령인구의 증가로 노인성질환(치매, 뇌졸증 등)을 전문적으로 치

료하고 재활할 수 있도록 조기치매진단과 교육을 실시해 지역사회

의 정신건강을 높이는 노인재활전문병원을 갖추는 일이다.

 

 <조울증의 증상과 치료법>

 일명 ‘기분장애’로 일컬어지는 조울증은 ‘조증’과 ‘우울증’

으로 구별된다.

 조울증의 기전은 유전·생물학적 요인·심리사회적 요인·신체질

환·약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병을 유발한 것으로 의학계에

서는 규명하고 있다.

 특히 많은 임상가들은 조울증이 환경으로부터의 스트레스와 밀접

한 관계가 있다고 각종 연구자료를 통해 밝히고 있다.

 조울증의 증상은 크게 ‘조증’과 ‘우울증’으로 구별할 수 있

다.

 조증의 경우 자기도취·자기만족·허세·낭비벽 등이 심하다. 그

러나 흥분상태의 속도가 빨라 금방 실패하거나 포기할 일을 빈번하

게 벌인다. 또 조증환자등은 알코올이나 약물남용·자살시도·강박

증상·싸움질 등 반사회적 행동 등을 보이는 수가 많다.

 우울증은 조증과는 반대로 정서적으로 우울하며 슬픈 느낌을 가진

다. 우울증이 심한 경우엔 심각한 수면장애를 겪게 되며, 아침에 심

하고 오후에는 덜해지는 현상이 특징이다.

 특히 회복단계에 접어든 환자들 사이에 ‘자살기도’가 빈번하게

발생하므로 이 시기에는 보호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시기별 발병 유형으로는 소아기때에는 학교공포증·애착·성격저

하 등으로 발병하며, 사춘기때에는 반사회적 행동·무단결석·약물

남용 등으로 나타난다. 또 노년기에는 경제적 장애·배우자상실·질

병·건강염려증 등에 의해 우울증이 잘 나타난다.

 조울증에 대한 치료법으로는 크게 관리치료, 약물치료, 정신치

료, 전기경련치료 등이 있다. 관리치료는 환자상태에 따라 경증일때

와 회복기때 활용되는 치료로, 약물치료와도 병행된다.

 정신치료에는 인지치료와 대인관계치료가 있는데 이는 자신과 세

계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버리고 대신 유연성있고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도록 행동반응을 연습시키는 것이다.

  

 <프로필> 권혁일 박사

 정읍 옹동에서 55년 태어난 권혁일 박사는 전라고와 전북대 의대

를 졸업했으며, 전북대 의대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지

난 87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북대병원에서 인턴과정과 전공의과정을 마친 권 박사는 83년 신

경과(제70호)와 정신과(제72호)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으며, 이듬해

인 84년 남원의료원 신경정신과장으로 자리를 옮겨 수많은 정신질환

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임상의로 3년동안 병원을 지키며 정신질환자들의 사회복귀를 위

해 노력해온 권 박사는 신경정신과 의료인 양성을 위해 86년 원광

대 의대 강단과 실습실로 들어갔다.

 권 박사는 ‘향정신병 약물복용중인 정신분열증환자의 자율신경

계 기능장애에 관한 연구(87년)’란 임상연구논문을 발표하는 등 후

학양성과 의학연구, 환자진료 및 치료에 심혈을 기울였다.

 의과대학 교수로 5년여의 세월을 예비의사 양성에 매진해오던 권

박사는 미국 알라바마대학으로의 연수일정을 추진되고 있었다. 하지

만 권 박사는 미국연수를 다녀올 경우 평소 소망해온 ‘정신질환자

를 사회에 복귀시킬 수 있도록 하는 재활치료’와 더욱 거리가 벌어

질 것이 안타까워 미국연수와 대학교수직을 포기하고 전주에서 권혁

일신경과의원(구 한진고속터미널 옆)을 개원했다.

 그리고 전북신경정신의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권 박사는 지

난 99년 김제시 금구면 현위치에 삼성정신병원을 개원, 정신질환자

들의 재활을 위해 그의 인생을 투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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