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교수의 수학이야기
김인수교수의 수학이야기
  • 김인수교수(전북대 자연과학대학
  • 승인 2003.06.23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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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나는 수학을 하는가?

 수학에 시달리다 보면 한번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

다. ‘나는 이공계에 가서 전공을 할 생각도 없고 더구나 수학자가

될 마음은 없다. 삼각형의 두 변의 합이 나머지 한 변보다 크다라

는 식이 어마어마한 진리나 되는 것처럼 배우는데 그런 것쯤은 지나

가는 개도 알고 있다. 언제 개가 달리면서 지그재그로 달리는 것을

보았느냐. 그러나 우리들이 이토록 수학 때문에 시달리는 이유는 입

시 때문이다. 대학에만 가면 수학책을 불살라 버릴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골치 아픈 수학으로부터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러나 기왕에 수학에

등을 돌리는 구실을 찾을 바에야 ‘왜 나는 수학을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철저히 따져 보는 것이 차라리 옳은 일이다. 수학

에 진저리치는 사람을 관찰해보면 그들은 다음 다섯 가지 생각의 악

순환고리에 속한 사람임을 곧 알 수 있다.

 1) 나는 머리가 나쁘다. 2) 나는 수학을 못한다. 3) 나는 왜 수학

을 배우는지 알 수 없다. 4) 내 인생에 수학이 필요 없다. 5) 틀림

없이 시험에 떨어질 것이다.

 이 중 하나를 믿게되면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져 5가지 모두를 믿

게 된다. 이것은 또한 자신에 대한 패배인 것이다. 실제로 중학교과

정에서 배운 것조차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

다. 그것은 수학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이다. 국어를 배

우는 이유가 소설가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닌 것과 다름 아니며, 역사

를 배운다고 역사가가 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 이를테면 기술자, 과학자, 예

술가, 법률가가 된다 할지라도 적어도 교양 수준의 내용은 충분히

소화하고 있어야 한다. 야구시합을 9회전까지 할 때라도 실제로 시

합에서는 선수 중에 몇 사람은 단 한번도 공을 잡아보지 못하고 경

기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 그토록 열심히 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

고 선수가 있는 곳까지 공이 날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

한 연습을 했기 때문에 어떤 공에도 자신이 있다.

실제로 9명선수 모두가 지닌 그 자신감이 시합을 무사히 치르게 하

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듯 학문이든 운동이든 이 점에서는 똑같다.

교실에서 배운 지식이 반드시 시험에서나 사회에서 쓰이는 것은 아

니지만, 언제 어디서이건 필요할 때는 받아넘길 수 있다는 자신감

은 그 사람의 장래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는 매일같이 공기를 마시고 살면서도 공기의 중요성을 의식하

지 못하듯 수학을 배우고 그 사고방식이 몸에 밴 사람은 본인도 모

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을 하기 마련이

다. 심지어 소설을 쓸지라도 수학적인 사고가 있는 소설가는 줄거리

에 순서를 따지는 순서집합의 이론을 도입하게 되며, 소설가뿐만 아

니라 법률가, 경영관리자 등도 반드시 논리적으로 따질 줄 알아야

되는데, 그 사고 훈련은 주로 수학적인 것이다.

 삶의 지혜 속에는 여러 재질이 서로 얽혀 있다. 특정한 어느 기능

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보다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

에 익혀 놓았던 지식들이 작용될 때가 많다. 지식은 토막으로 되어

있지만 교양은 이러한 것들을 원활하게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

라서 생활의 지혜는 이러한 교양에서 우러나온다.

 초등학교 때 수학성적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알고 보면 수학적인

머리가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초등학교의 수학은 논리적으로 따지

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지루하고 재미없을 수가 있다. 수학

은 싫지만 따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최소한

의 논리성만이라도 있다면 수학을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수학을 싫

어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나는 수학 실력이 없어서 노력해도 되지 않

는다고 굳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스로 소질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공부하기도 싫어지고 심한 경우

에는 수학 책을 보기만 해도 알레르기 현상이 나타나고 수학 책을

들고 있는 것이 고통스럽기까지 한다. 나는 소질이 없다. 또는 수학

이 싫다고 단정해 버리는 사람은 수학을 좋아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

을 뿐만 아니라 수학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조차도 억지로 거부하

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되는 것이다.

수학을 좋아한다고 자기암시를 걸고 칠판 앞에서 수학문제를 멋지

게 풀어내는 자신의 모습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의 눈

빛도 상상해보면 수학이 재미있어질 것이다. 실제로 그런 학생이 뜻

밖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 정말 수학을 좋아하게 되고 성적도 올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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