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노래 <656>얼굴이 벌겋게 닳아오른 채
가루지기 노래 <656>얼굴이 벌겋게 닳아오른 채
  • <최정주 글>
  • 승인 2003.12.26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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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강쇠의 전성시대 <36>

“그래라우? 참 안 됐소이. 긍깨 사람언 맴얼 곱게 써야허는 것인디.”

그 순간 문득 내려온 김에 음전네나 만나고 갈까, 하는 생각이 강쇠 놈의 뇌리를 스쳐갔다. 주모와 살풀이하는 것을 보고 두 년놈을 다 죽이겠다고 낫을 들고 설치던 음전네가 느닷없이 찾아가면 어떤 얼굴로 맞아줄까, 궁금했다.

“경황 중에도 음전네가 하루에 한번씩언 내 주막엘 들리는구만.”

“왜라?”

“왜긴 왜겄어? 총각 땜이제. 음전헌 음전네 밑구녕에 바람얼 넣어 논 것이 누군디.”

“바람언 누가 넛다고 그러요? 여그다 하루내 세워놀라요?”

강쇠 놈의 말에 주모가 흐흐흐 웃다가는, 손을 잡아 안방으로 잡아 끌었다. 강쇠 놈이 좀은 버티면서 말했다.

“안방 말고 뒷방 하나 내주씨요. 성님허고 질펀허게 한번 마셔뿔라요.”

“그럴라요? 허면 글던지요.”

주모가 뒤곁을 돌아보았을 때였다. 사내들의 왁자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놈 저놈하고 상소리가 나오는 폼이 싸움이라도 일어난 모양이었다.

“왜 저런다요? 술맛 나기넌 글렀는개빈디요.”

“인월 한량패덜이 투전판얼 벌렸는디, 내 쫓아뿌까?”

주모가 그 쪽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때 사내 하나가 얼굴이 벌겋게 닳아오른 채 마당으로 나왔다.

“아짐씨, 나 돈 열냥만 주씨요.”

사내가 다짜고짜 말했다.

“아, 이센이 나헌테 돈?겨놓았소? 자기 광방에 것처럼 돌라고 흐시네.”

“좀 주씨요. 내가 언제 아짐씨럴 섭섭케 헌 일이 있소? 낼이라도 갚을 것인깨, 얼렁 주씨요. 한참 끗발이 오를라고 흐는디, 초치지 말고.”

이생원이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를 높이자 의외로 주모가 쉽게 수그러 들었다.

“흐기사, 내가 이센얼 못 믿으면 인월 땅에서 누굴 믿고 살겄소. 알았소. 이 손님덜얼 방으로 뫼시고 디리리다. 손님덜, 요쪽으로 오시씨요.”

주모가 두 사람을 안채의 뒤곁이 아니라 헛간을 돌아 아랫채의 뒤곁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을 것 같은 작은 방이 두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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