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노래 <686>내를 어찌해야할까 궁리
가루지기 노래 <686>내를 어찌해야할까 궁리
  • <최정주 글>
  • 승인 2004.02.04 18: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 뿌린대로 거두기 <4>

“사람이 염치가 있지라우. 어찌 입 싹 닦고 모른체끼 헌다는 말씸이요. 이년이 비록 화냥년일망정 사람의 도리는 아는구만요. 암 말씸 마시고 너두씨요.”

옹녀 년이 기어코 금가락지 하나를 포수 박가의 손아귀에 쥐어주었다. 그러자 박가가 성질을 파르르 내며 금가락지를 계집 앞에 내려놓았다.

“아, 아니랑깨 그러시요이. 짐승도 집 안에 든 짐승은 안 잡는다고 했구만요. 내 비록 아짐씨럴 칠선골 용바우 아래서 업어왔제만, 내 집에 든 짐승이나 매한가진디, 어찌 품삯얼 받을 수가 있겄소. 정 그러실라면 시방 당장 내 집에서 나가씨요.”

짐짓 화난 체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러는 것을 안 옹녀 년이 슬그머니 금가락지를 제 주머니에 넣었다. 꼭 금가락지가 아니라도 은혜를 갚는 방법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마누라가 아이를 낳다가 죽은지 삼년인가 지났다고 했으니, 모르면 몰라도 계집의 살덩이가 그리울 판이었다.
비록 이놈 저 놈 가리지 않고 받은 더러운 몸뚱이지만, 한 달 남짓 사내를 품지 않았으니, 그만하면 포수 박가한테 살보시를 한다고해도 더럽다고 마다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지난번 마천 삼거리 주막에서야 경황 중에 계집 품을 생각을 못했을지라도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그때는 주모도 있었고, 노루 한 마리를 함양장으로 팔러가던 길이었기에 계집의 은근한 눈치를 모른체 했을망정 지금은 깊은 산중의 외따로 떨어진 집에 단 둘이 있잖은가? 더구나 처음 열흘 남짓은 자기 손으로 똥오줌을 받아내던 계집이었다. 비록 얼굴을 돌렸다고는 해도 계집의 속살을 볼만큼은 보았을 것이니, 알만큼은 알고 있을 판이었다.

어제부터 옹녀 년은 어떻게 하면 포수 박가가 자연스레 제 년의 몸을 안을 수 있을까, 그 궁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계집의 그런 눈치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박가는 여간해서는 그런 틈을 주지 않았다. 어제 밤에도 박가는 요강만 안으로 들여주고 자기는 부엌 나무간에서 잤다.

하늘은 사흘 굶은 시어미상으로 잔뜩 찌푸리고 있었고, 바람이 문풍지를 흔드는 추운밤이었다. 박가는 초저녁에 한 번, 밤이 깊어서 또 한번, 군불만 때주었을 뿐, 추우니, 들어와 자라고 옹녀 년이 아무리 권해도 한데 잠을 사흘거리로 자고 다닌다면서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와 웃목이 되었건, 아랫목이 되었건 옆자리에 눕기만하면 어떻게든 사내를 이불 속으로 끌어들일 수가 있으련만 박가는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이었다.

박가가 군불을 때느라 마른 나뭇가지를 툭툭 꺾는 소리에 잠이 깬 옹녀 년이 저 돌부처같은 사내를 어찌해야할까 궁리하다가 혼자 싱긋 웃고는 일부러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